국회의장까지 EU시민권 장사…키프로스, 투자이민제 중단
알자지라 잠입취재에 국회의장의 부정청탁 정황 포착
키프로스 등 EU 일부 회원국 '시민권 장사' 논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시민권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지중해의 소국 키프로스가 200만유로만 내면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도 유럽연합(EU) 시민권을 부여해온 제도를 중단하기로 했다.
키프로스 국회의장까지 시민권 장사에 연루된 정황이 외국 언론의 보도로 알려진 직후 이뤄진 결정이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키프로스 정부는 다음 달부터 비유럽인 대상의 투자이민제도를 중단한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성명에서 투자이민제도의 허점이 악용될 소지가 있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2004년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된 키프로스는 200만유로(27억원) 이상을 자국에 투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럽연합 27개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하면 EU 27개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작 키프로스에는 거주할 필요도 없어 비유럽권 부호들이 이 제도를 특히 선호했다.
키프로스의 투자이민제도 중단 결정은 아랍권 방송사인 알자지라의 탐사보도로 고위 관리들의 '시민권 장사'가 사실로 드러난 직후 내려졌다.
알자지라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범죄전력이 있는 가상의 중국인 사업가의 서류를 꾸며 키프로스에 투자이민을 타진했는데, 현직 국회의장 등 고위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데메트리스 실루리스 키프로스 국회의장도 이 가상의 중국 사업가가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런 내용이 방송되자 그는 사과 성명을 내고 관련 조사가 종료될 때까지 직무를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작년 11월에는 미국 등 주요국의 지명수배를 받는 말레이시아 출신 금융사기범 조 로우가 2015년 키프로스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고 500만유로(67억원) 상당의 리조트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EU 집행위원회는 그동안 키프로스를 비롯해 몰타, 불가리아 등 일부 회원국의 관대한 투자이민제도가 돈세탁이나 역외탈세를 노리는 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면서 심사를 규제를 대폭 강화하라고 요구해왔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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