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이 남긴 '화약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스탈린, 아제르바이잔에 아르메니아 영토 나고르노-카라바흐 넘겨
20% 무슬림이 80% 기독교 아르메니아인 통제…갈등 증폭
소련 붕괴 후 양측 전쟁…3만명 사망·난민 120만명 발생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남캅카스(코카서스)의 이웃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30년 가까이 갈등을 빚고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기원은 옛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본래 기독교 정교회를 믿는 아르메니아인의 터전이었으나 이슬람 왕조가 이 일대를 차지하면서 튀르크계 무슬림이 대거 유입됐다.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과 튀르크 무슬림이 서로 공존하는 곳이 됐고, 20세기 들어 사회주의 혁명의 물결이 이곳에 밀어닥쳤다.
19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이 속한 캅카스 지역이 소련에 복속된 직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르메니아공화국으로 귀속됐다.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24년 행정 편의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내 자치지역으로 복속시켰다.
그 결과 약 20%에 불과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이 약 80%에 달하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을 통제하게 됐고, 양측의 갈등은 점점 증폭됐다.
소련이 존속할 당시에는 적정선에서 무마됐으나, 소련이 무너지자마자 70년 가까이 묵은 갈등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언했고, 1989년에는 아르메니아가 이 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은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독립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양측 간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1992년 러시아군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철수하자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에서 전면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비롯해 그 주변의 일부 아제르바이잔 영토까지 점령했다.
양측은 1994년 5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의원 총회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양측에서 약 3만 명이 전사했으며 아르메니아에서 50만명, 아제르바이잔에서 70만명가량의 난민이 발생했다.
큰 희생을 치르고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앙금만 남겼다.
양측은 휴전 합의 이후로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크고 작은 교전을 이어갔으며, 지난 2016년에는 양측의 무력충돌로 약 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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