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남아공 전선절도에 학교 온라인 수업도 '뚝'
고질적 병폐, 코로나19에 악화…도둑 케이블 자르다 감전사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전선절도 사건 때문에 오늘 온라인 수업은 없습니다. 대신 집에서 학업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주세요."
지난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 한 사립학교에선 갑자기 학생들에게 우리의 카카오톡에 해당하는 왓츠앱으로 이런 공지를 했다.
학생들 입장에선 하루 쉰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학부모 입장에선 곤혹스러울 수도 있는 대목이다.
남아공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아직도 온라인 수업을 하는 곳들이 있다.
학교도 못 가는 터에 온라인 수업이나마 하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얼마나 수업을 못 하게 될까 가늠할 수 없던 터에 다행히 다음날부터 온라인 수업이 재개됐다.
지금까지 정전사태로 온라인 수업을 몇 시간 못한 경우는 있었지만, 전선절도로 아예 하루 수업을 공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학교 선생은 17일 이와 관련, 연합뉴스에 "도둑들이 학교 주변 구리전선 2㎞를 싹둑 잘라가면서 학교 광섬유도 손상시켰다"면서 "다행히 손상 부분을 빨리 발견해 고쳤지만, 학교 서버 하나만 작동 중이고 다른 서버는 아직 다운돼 프린트, 스캐닝 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남아공에서 구리선을 몰래 팔기 위한 전선절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1년 7월과 8월에는 전선 절도 탓에 프리토리아와 이 나라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를 잇는 아프리카 최초 고속철도 '하우트레인'이 잇달아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에 당시 에너지부 장관이 나서 전선을 훔치는 사람은 살인자이며 파괴자라면서, 그 같은 사회경제적·정치적 파괴행위를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와중에 경제적 곤궁함이 심해지자 전선절도도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죽하면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지난 4월 전국적인 봉쇄령(록다운) 시행 가운데 전선 절도 등 공공재 훼손을 개탄하면서 엄벌 의지를 밝혔다.
그러잖아도 부실 경영으로 악명 높은 순환정전을 실시해온 국영전력회사 에스콤은 록다운 시행 이후 케이블 절도와 시설 훼손이 증가해 전력 공급이 차단되고 손상 수리비에 상당액이 든다고 보고했다.
남아공 주재 한국 대사관도 직·간접 피해를 봤다.
예전 대사 관저도 도둑이 전선을 두어차례 잘라갔다고 한다.
최근 한 공관원은 "며칠간 우리 집이 정전돼 처음에는 순환정전인가 보다 했지만 다른 집들은 불이 켜져 이상했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집과 연결된 주변전선 50m가량이 절단돼서 그런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선절도는 도둑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현지매체 IOL의 지난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케이프타운에서 케이블 도둑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철도 전력선을 끊다가 감전사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다.
드라켄스테인 시청 대변인인 리아나 겔덴후이스는 남아공이 전선절도 급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선절도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범죄로 전력, 공중교통, 전화, 인터넷 서비스 등 주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타격을 준다"면서 전선 절도로 정전이 되면 방범용 전선철책도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구리선을 알루미늄선으로 대체한 결과 절도가 급격히 줄었다는 다른 곳의 선례를 참고해 드라켄스테인 시청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전선절도는 비단 남아공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생활고가 심했던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이른바 IMF형 전선절도 사건이 곳곳에서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남아공에선 전화가 잘 안 되면 절도 사건일 가능성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큼 비일비재하다는 면에서 그 빈도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남아공 밑바닥 생계가 한층 더 절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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