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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검은 상복을 두른 듯…미 캘리포니아 산불피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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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검은 상복을 두른 듯…미 캘리포니아 산불피해 현장
실리콘밸리 동부, 서울면적 2.7배 태우고 거의 진화
주민 "18년 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온 산불 처음"
한때 대피 준비로 긴박…둥지 잃은 동물 주택가로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16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서부 산불 피해 현장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동쪽의 캘러베라스 저수지를 찾아가는 길.
저수지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는 도시 밀피타스를 지나 꼬불꼬불한 산속 도로를 따라 한참 산을 오르자, 도로 주변으로 새카맣게 그을린 산비탈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냈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 등 미국 서부 해안을 휩쓸고 있는 산불이 할퀴고 간 흔적이다.
그렇게 그을린 산비탈 아래로는 돌무더기나 흙더미가 무너져 내려 도로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매캐한 냄새가 강해졌다. 산속 도로라 지나는 차량은 거의 없었지만 일행과 함께 운동복을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는 주민들은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일대에 식수를 공급하는 5개 저수지 중 가장 큰 캘러베라스 저수지의 주변은 지난달 18일 시작된 'SCU 번개 복합 화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낙뢰로 시작한 이 화재는 서울 면적(약 605㎢)의 2.7배에 달하는 실리콘밸리 동쪽의 산림 39만6천624에이커(약 1천605㎢)를 태웠다. 주택 26채와 건축물 222동이 파괴됐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부상자 6명에 그쳤다.
캘리포니아주 소방국(캘파이어)에 따르면 이날까지 이 산불은 98%가 진화돼 대부분 불길이 잡힌 가운데 일부만 남은 상황이다.
저수지 건너편에도 화마의 흔적이 뚜렷했다. 소방관들이 불길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 것인지, 작은 도로를 경계로 도로 왼편으로는 황금색 초지가 펼쳐진 반면 도로 오른편은 숯덩이였다.



저수지로 가는 길에 있는 한 공원에서 만난 여성 새미는 "새너제이에서 18년을 살았지만 산불이 이렇게 가까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새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밖에도 못 나가서 답답한데, 화재까지 크게 나고 하늘이 오렌지색이 되면서 공기질도 나빠졌다"며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만 "불길이 어디까지 왔는지 등 산불 정보를 계속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며 "산불 시즌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프리몬트와 밀피타스, 새너제이 동부 등 실리콘밸리 일부 지역에는 SCU 복합 화재로 지난달 '대피 경보·주의보'가 내려졌다.
이는 당장 대피할 필요는 없지만 대피령이 곧 떨어질 수 있으니 가족이 함께 모여 귀중품과 옷가지, 식량, 약품 등 비상물품을 챙겨두라는 것이다.
밀피타스에서 살고 있다는 한 남성은 익명을 요구한 채 "내가 사는 곳에 대피 주의보가 내려졌었다"며 "14년을 여기서 살았지만 대피 주의보가 발령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남성은 가족들이 함께 짐을 싸면서 실제 대피령이 떨어졌을 때 머물 친척 집에 연락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공기질도 좋아졌고 다 괜찮다"고 말했다.



밀피타스의 한식당 장수장에서 일하는 종업원 김숙진씨는 "28년을 이곳에서 살았는데 최근 들어 산불이 빈번해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며 "올해는 특히 가장 오랜 기간 산불 피해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식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실내 영업을 중단하고 포장 음식과 야외 테이블만 운영하고 있는데 산불로 대기질이 나빠지자 야외 테이블을 찾는 손님이 뚝 끊겼다.
산불로 둥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주택가로 내려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샌타크루즈의 '네이티브 애니멀 레스큐'는 지난달 번개로 대형 산불이 번지자 일대 주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띄웠다.
야생동물들이 산불을 피해 민가에 나타날 수 있으니 밤에 키우는 애완동물을 집안에 들여놓고 목마른 야생동물을 위해 물을 밖에 내놔달라는 것이다.
실제 'CZU 번개 복합 화재' 발생지에서 가까운 쿠퍼티노의 주택가에도 최근 코요테가 나타나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
주민 실피 샤는 "이웃 사람들 얘기가 코요테가 비쩍 마르고 한참 굶었다고 하더라.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sisyph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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