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스가시대] "실리외교 택하면 한일관계 개선…정상회담 해야"
전문가 "혐한 감정 이어가면 꼼짝 못 하게 된다"…니카이 역할에도 주목
"아베 계승한 스가 정권이 새로운 것 할 수 있을지 의문" 회의론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발족함에 따라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일본의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스가 정권이 '아베 계승'을 표방한 이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과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던 아베 총리가 물러난 것이 양국 갈등을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을 함께 내놓았다.
스가 내각 출범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상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스가 정권이 아베 정권을 사실상 연장한 것이며 스가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 무렵에 한일 관계의 전환점이 생길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연합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위기에 빠진 아베 정권이 방책을 써서 아베 정권을 계승할 내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스가 정권을 규정하고서 "스가 정권이 새로운 것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한일 갈등의 재료인 정치지도자의 역사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스가가 "아베에 동조한 인물이다. 그의 생각도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1997년에 일본의 학교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기술한 것이 문제가 있다며 아베가 '일본의 전도(前途)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을 결성하자 스가가 동참한 것을 거론했다.
모임은 위안부 관련 기술이 이른바 '자학(自虐) 사관'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하고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사과한 '고노(河野)담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모임에는 스가 외에도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등이 참여했고 이들은 아베 정권에서 요직에 기용된 바 있다.
와다 명예교수는 다만 스가가 역사 문제에서 아베처럼 선도하는 성향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아베보다는 한국과 대화 의지를 더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무라 간(木村幹) 일본 고베(神戶)대 교수는 "아베 총리는 좋든 나쁘든 남북 양쪽과의 교류에 관심을 지닌 인물이었으므로 한국을 다양한 방식으로 흔들었다"며 스가 정권에서의 일본 정치권은 "아베 총리만큼 한국·북한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며 평온한 동시에 냉담한 관계로 이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스가가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지녔거나 한국과 관계가 깊은 인물은 아닌 것 같지만 역사 인식에서 강경파인 시모무라 의원을 자민당 정조회장에 임명하는 등의 상황을 보면 "정권 내부에서 역사 인식 문제로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이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기무라 교수는 한국 일각에서 '스가는 아베와 달리 한국을 이해하는 편'이라는 이야기가 도는 것에 관해 "친한파의 거두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외조부로 둔 아베 총리와 한국 보수파의 관계는 본래 매우 친밀했고 스가 씨가 이에 필적할 무언가를 지녔을 리가 없다"며 "지나친 기대를 심으면 큰 실망을 낳는다"고 덧붙였다.
징용 문제나 수출규제 등 갈등 해결을 위해 중요한 요소로 정상회담을 꼽았다.
기무라 교수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으면 관료가 한일 관계를 개선하거나 정상화하는 작업에 좀처럼 나서기 어렵다"며 "우선 정상회담을 해서 가능한 것만이라도 구체적인 의제를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서울 특파원을 경험한 저술·평론가인 아오키 오사무(靑木理) 씨는 스가 정권이 실리적인 외교를 추구한다면 한국과의 관계가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스가가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의 역할에 주목했다.
아오키 씨는 미·중 갈등이 격화해 중국 포위망이 확산하는 과정에서도 니카이 간사장이 중국을 중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을 거론하며 "스가·니카이라는 권력 중추에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아베와는 다른 실리적인 외교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스가 정권이 실리보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혐한·반한 감정을 아베 정권 계승이라는 명목으로 이어가면 한동안 (한일관계가)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오키 씨는 스가의 경우 "아베와 같은 국가관·역사관이 강하지는 않으므로 스가·니카이가 권력의 중심이 되면 지금 이상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익단체 일본회의를 분석한 저서 '일본회의의 정체'를 출간하기도 한 아오키 씨는 스가가 우익단체에 이름을 올린 것에 관해 정치권에 '일단 가입하고 보자'는 분위기도 있으며 "이들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이 모두 엄청난 우파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의 저서 '일본회의의 전모'를 보면 스가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신도정치연맹(신정련) 국회의원 간담회,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창생 '일본' 등 4개 우익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돼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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