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인-매수인 줄다리기 장세…'세입자 없는 아파트' 더 비싸
"발 빠른 법인들, 이미 아파트 정리"…법인 급매물 찾는 문의도 늘어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홍국기 기자 = 지난달 이후 서울의 아파트 거래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일부 단지에서 급매물이 나오고 가격이 조정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다주택자·법인이 내놓은 아파트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다만, 급매물이 많지 않고, 일반 매물은 집주인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아 여전히 신고가(新高價)로 매매가 성사되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새 임대차 법 시행 영향으로 임차인 권리가 강화되고 전셋값이 오르면서 전세를 낀 아파트보다 당장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거래절벽'에 일부 급매물…매수-매도인 간 신경전 '팽팽'
1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거래는 총 3천992건으로, 전달(1만647건)의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아직 신고기한(30일)이 남아있지만, 감소 폭이 워낙 커 이같은 급감 추세는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거래절벽'은 매도인-매수인 간의 힘겨루기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 얘기다.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집주인들은 여전히 매매가격을 낮추려 하지 않고, 매수인은 오른 값엔 못 사겠다면서 양측 간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급매물이 나오면서 가격이 조정되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파크뷰자이1단지 전용면적 84.9㎡는 지난달 29일 12억4천만원(10층)에 거래된 뒤 급매물이 나오면서 가격이 조정되는 분위기다.
인근 G 공인 대표는 "최근 급매물이 좀 나오고 있고, 지금도 입주가 가능한 1층이 10억5천만원에 매물로 나온 게 있다. 1층이기도 하지만, 집주인이 급전이 필요하다며 가격을 낮춰 내놓은 거로 안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평형은 11억5천만∼14억원까지 호가가 형성돼 있다. 집주인들 간에도 생각의 차이가 커 호가가 2억5천만원까지 벌어진 것이다.
서초구 서초동 현대아파트 84.34㎡는 7월 초 14억6천만원(4층)에 거래된 뒤 지난달 17일 14억9천800만원(5층)에 매매되며 가격이 올랐다가, 이달 5일 14억8천만원(2층)으로 소폭 조정됐다. 이 단지 역시 집주인들은 15억원을 넘게 부르고 있지만, 호가에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차 131.48㎡는 6월 초 30억5천만원(11층)에 신고가로 거래된 뒤 3개월 동안 거래가 없다가 최근에 28억3천만원(4층)에 매매됐다.
집주인들은 32억∼34억원을 부르지만, 이 가격에는 매수세가 붙지 않는 '힘겨루기' 양상이다.
인근 중개업소들은 "매수 문의는 꾸준하지만, 지금 시세대로 매입하기는 꺼리는 분위기이다.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집주인들이 가격을 내리는 분위기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리브온이 13일 발표한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의 매수우위지수는 96.2로 전주(101.5)보다 5.3포인트 떨어져 3개월 만에 기준점인 100 밑으로 내려갔다.
강북지역은 95.4에서 99.3으로 올랐지만, 강남이 103.4에서 97.0으로 떨어졌다.
◇ 신고가 행진도 여전…'세입자 없는' 아파트값 더 비싸
일부 단지에서는 가격 조정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신고가를 경신하는 단지도 여전하다.
마포구 상암동 상암월드컵파크3단지 84.84㎡는 이달 4일 10억9천만원(12층)에 거래되며 신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7월 9억9천만원(7층)에 신고가로 거래된 뒤 8월 9억5천만원(11층)으로 가격이 조정되나 싶더니 다시 가격이 뛴 것이다.
해당 평형은 집주인들이 11억∼12억7천만원을 부르고 있지만, 매수세가 붙지 않고 있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 얘기다.
성동구에서는 하왕십리동 센트라스아파트 84.77㎡가 이달 5일 16억4천500만원(11층)에 거래되며 직전 신고가인 6월 14억8천700만원(10층)보다 1억5천만원 넘게 올랐다.
행당동 두산위브 59.99㎡도 이달 1일 11억8천만원(6층)에 역대 최고 금액으로 거래되며 직전 신고가인 6월 10억3천만원(7층)보다 1억5천만원 뛰는 등 가격 오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를 낀 아파트와 바로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 간의 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59.78㎡는 지난달 8일 14억원(16층)에 매매됐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해당 물건은 바로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였는데, 지금 이런 조건의 물건은 13억5천만∼14억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반면, 같은 평형에 전세를 낀 물건은 12억원대 후반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인근 I 중개업소 대표는 "전셋값이 크게 오르고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기존 임차인이 나가려 하지 않으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입주 초기 전세 보증금이 3억5천만∼4억원 수준에서 최근 7억∼7억5천만원까지 올랐는데, 새 임대차 법 시행으로 앞으로 3∼4년간은 보증금을 수천만원밖에 올리지 못하게 되자 매수자들이 바로 다른 세입자를 들일 수 있는 조건의 매매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I 공인 대표는 "이런 현상은 그라시움뿐 아니라 아르테온, 아이파크, 베네루체 등 인근 아파트들이 다 똑같다. 수천만원 더 주더라도 입주 가능한 물건을 찾아 달라는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 법인·다주택자 물건 하나둘씩 풀려…증여·월세 전환도 여전
다주택자·법인이 내놓은 아파트도 어렵지 않게 확인되지만,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수준은 아니다.
정부는 7·10대책에서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취득세율을 최대 12%까지 높이고,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을 최고 6.0%로 높였다. 이들이 보유한 아파트가 시장에 나와 공급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조치였다.
강남구 압구정동 한 중개업소 대표는 "법인 거래의 경우 보유가 아니라 투자가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발 빠른 법인들은 이미 매물을 많이 내놨고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금 부담이 커지자 바로 보유 주택 정리에 들어간 법인들이 있다"며 "아파트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전에 서둘러 정리하려 조용히 움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마포구 M 공인 대표는 "세금폭탄 맞게 생겼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했던 다주택자가 있는데, 결국 강북을 정리하고 강남에 똘똘한 한 채로 가더라. 현금 부자는 모르겠지만, 2채, 3채 가진 사람 중에 세금 걱정 안 하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강동구 I 공인 대표도 "다주택자 매물이 나오는 분위기"라면서도 "많은 양은 아니고, 급하게 내놓는 것도 아니다. 내년 6월부터 세금 중과가 시작되기 때문에 다들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정부에서는 다주택자·법인의 아파트 매도 움직임이 뚜렷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9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법인이나 다주택자의 경우 팔려는 물량은 30% 늘었고 사려는 물량은 3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집값 안정 사례로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값이 4억원 하락했다고 소개하면서 이 지역 중개업소에 법인 물건을 찾는 문의도 늘었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는 반포자이 84.94㎡가 7월 28억5천만원(25층)에서 지난달 24억4천만원(18층)에 거래되면서 4억원 넘게 떨어졌다고 소개했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이 거래가 법인 명의의 아파트를 대표 개인 명의로 전환한 특수거래라고 전했다. 이런 소식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반포동 한 중개업소 대표는 "4억원 싸게 팔렸다는 기사가 나온 뒤 법인 매물이나 급매를 찾는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개업소들은 다주택자들이 아파트를 팔기보다는 증여로 돌리고, 전세를 반전세로 전환해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위기도 여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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