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둘로 갈라진 9·11…뉴욕서 동시 추모식(종합)
9·11박물관, 코로나 방지 위해 유족이 직접 호명하고 애도하는 절차 없애
반발한 일부 유족, 인근에서 별도 추모식…트럼프·바이든 '펜실베이니아행'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3천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가 19주기를 맞았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가 11일(현지시간) 뉴욕,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워싱턴DC 인근 국방부(펜타곤)에서 열렸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집중된 옛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을 상징하는 푸른색 '애도의 빛' 광선 두 줄기가 전날 밤 뉴욕 하늘을 밝혔다.
이번 9·11은 당시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여느 때보다 더 침울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코로나19로 뉴욕시에서만 2만3천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이는 19년 전 테러로 뉴욕시에서 숨진 2천700명의 8.5배가 넘는다.
코로나19는 미국인들이 9·11을 추모하는 방식도 바꿔놨다.
이날 오전 뉴욕 로어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진행된 공식 추모식은 유족들이 직접 돌아가면서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애도하던 전통을 깨고 미리 녹음한 음성을 틀어 희생자의 이름만 차례로 호명했다.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예년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온 유족들은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대신한 뒤 차분히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참석해 팔꿈치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9·11 추모식에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연설을 불허하는 전통에 따라 조용히 묵념만 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바이든 후보가 9·11 때 아들을 잃은 90살 노모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광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시 WTC에서 근무하던 동생 조경희씨를 먼저 떠나보낸 조진희(55)씨는 이날 추모광장에서 AP통신 기자와 만나 "건물이 무너지는 그 순간을 머릿속에서 지우기가 어렵다"며 "19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상실의 고통은 여전하다"고 슬퍼했다.
앞서 9·11 추모박물관 측은 군중을 모이게 해 코로나19를 퍼뜨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애도의 빛' 발사를 취소하려고도 했다. 한달 전 공개된 취소 계획에 유족들이 분노하자 결정을 번복하고 전야부터 이날 밤까지 두 줄기 광선을 쏘기로 한 것이다.
애도의 기회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일부 유족은 공식 추모식과 별도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몇 블록 떨어진 주코티공원에서 별도 추모 행사를 개최했다.
테러 당시 출동했다가 숨진 소방관들을 기리는 한 단체가 주최한 별도 추모식 역시 마스크 착용과 6피트 거리두기 규정을 적용했다. 펜스 부통령 부부는 이 행사에도 참석해 성경을 낭독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120여명이 참석한 별도 추모식에서 펜스 부통령은 성경 낭독에 앞서 "옛 말씀이 여러분과 우리의 상실을 위로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추모 행사는 아예 유족들을 초대하지 않았고, 대신 행사 후 별도로 추모관을 방문할 수 있게 허용했다.
이밖에 다른 지역에서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추모 행사를 취소한 사례가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올해 9·11은 대선을 두달 앞두고 열려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비행기 중 1대가 추락한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 현장을 찾았고, 바이든 후보도 뉴욕 추모식을 마친 뒤 역시 섕크스빌로 향했다.
주요 경합주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를 1% 미만 격차로 겨우 이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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