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노조 탄생 2주년…"'판교의 등대' 불은 꺼지지 않았다"
넥슨·스마일게이트 노조 인터뷰…"워라밸 생겼지만, 일부 과로 여전"
"주 52시간제 지키려는 인식 필요…윗선 안 바뀌면 생태계 무너져"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 한국 게임업계 1·2호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로 만 2년이 지났다.
노조가 탄생하면서 게임업계는 지난해 '포괄임금제'(야근이나 휴일근무수당을 포괄적으로 기본급에 산입하는 임금 체계)를 폐지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의 노조 지회장은 3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아 '판교의 등대'로 불리던 게임업계에 드디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생겼지만, 등댓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넥슨지회)의 배수찬 지회장은 스타팅포인트가 출범한 지 꼭 2년이 된 이 날 소회를 묻자 "매우 보람차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에서는 신작 출시를 앞두고 야근과 밤샘 근무를 반복하는 '크런치 모드'와 이를 가능하게 한 포괄임금제가 오랜 폐해로 지적돼왔다.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크런치·포괄임금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넥슨 노조는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도했다.
지난해 1월 넥슨 자회사 네오플의 노사가 국내 게임업계 최초의 단체협약을 합의하면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했고, 한 달 뒤 넥슨도 같은 합의를 이뤘다. 이후 엔씨소프트·넷마블 등이 잇따라 포괄임금제를 없앴다.
배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폐지 후) 야근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눈으로 확인했다"면서 "회사에서도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넥슨 사측은 평균 노동시간 데이터를 노조에 제공하면서 근로 환경 개선에 협조했다고 한다. 노조는 업무 강도의 변화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배 지회장은 "(크런치처럼) 단기간 집중 근무하는 경우는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요한 집중 근무를 마치고 그다음 주에 쉬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마일게이트에서는 아직 주 52시간 근무제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스마일게이트지회)가 직원 2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포괄임금제 폐지 후 노동시간이 감소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47.7%)는 응답자와 '그렇지 않다'(46.4%)는 응답자가 반반으로 갈렸다.
평균 노동 시간을 묻자 '주당 52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한 비율이 2018년 5.0%에서 올해 9.5%로 오히려 4.5%포인트 늘어났다.
SG길드 차상준 지회장은 "조직·직무별로 노동 시간 양극화가 생긴 것"이라며 "주 52시간이 넘으면 컴퓨터가 잠기는데 51.9시간에 업무 시간을 정지해놓고 계속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면 불법이라는 사실을 스튜디오 수장 등 조직의 장들에게 회사가 계속 알려야 한다"면서 "조직장이 지키지 않으면 조직원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용자 측이 업무 환경 개선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자율'이라는 명목으로 아래에 맡겨버리니 '눈치 보는 조직장'과 '더 눈치 보는 조직원'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도 나타났다.
넥슨은 2월 말 재택근무를 시행했다가 3월 초 출근을 지시하면서 '재택근무가 필요한 인원은 조직장에게 신청해 허가를 받으라'고 방침을 내렸다.
이에 노조에서는 회사 앞 1인 시위를 통해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 지회장은 "사측에서 '조직마다 알아서 하라'는 방침을 내릴 때 노조 입장에서는 가장 많이 화가 난다"면서 "'나도 재택 할 테니 여러분도 눈치 보지 말라'고 하는 조직장이 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조직장도 있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업계에는 경영진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노동 시간 정상화로 여기지 않고 경영에 부담이 되는 비용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배 지회장은 'IT업계에는 미국 같은 노동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경영자가 많냐'고 묻자 "그런 분들은 미국에서 과로사가 발생하면 회사가 징벌적 손해 배상을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차 지회장은 "수장이 바뀌지 않으면 문화와 생태계 자체가 무너진다"며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1·2호 노조로서 지난해 초에 업계 최초 노사 단체협상을 체결한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내년 상반기에는 두 번째 단체협상을 해야 한다.
첫 단체협상이 그간 게임업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노동자 권리에 대한 첫 노사 합의였다면, 두 번째 단체협상에는 더 실효성 있는 처우 개선이 담길 전망이다.
차 지회장은 "계속 다니고 싶은 회사,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로 임단협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배 지회장은 "회사가 좋은 성과를 냈을 때 직원에게도 더 많은 이익이 돌아오도록 할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건강한 노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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