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이달부터 '반도체 고립무원'…재고로 버틴다지만
15일 미국 최고수준 제재 발효…전문가 "최악엔 스마트폰 시장 퇴출"
첨단제품 시장 경쟁은 꿈도 못 꿔…미 대선 이후 변화에 실낱같은 기대거는 화웨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인 화웨이(華爲)가 이달 15일부터 미국 정부의 제재로 모든 반도체 부품을 새로 구하지 못하게 되면서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됐다.
화웨이는 당장 비축한 대량의 반도체 부품 재고로 버틸 계획이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 미국 화웨이 '최대 압박' 효과 가시화
1일 미국 상무부의 공고에 따르면 화웨이를 대상으로 한 강화된 '반도체 제재'는 이달 15일부터 발효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자국 기술을 조금이라도 활용한 반도체 제조사가 화웨이와 원칙적으로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강화된 제재가 9월 15일부터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에서부터 생산 장비에 이르기까지 미국 회사들의 기술이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는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제재로 화웨이는 반도체 부품을 사실상 전혀 구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정부의 허가를 얻으면 예외적인 거래가 가능하다지만 미국 정부가 어디까지 허락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일부 중국 회사들이 미국의 '징벌'을 각오하고 화웨이에 반도체 부품을 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SMIC(中芯國際)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력은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화웨이가 필요한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작년 5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는 가장 먼저 퀄컴, 인텔, 브로드컴, 구글 등 미국 회사들과 거래가 막혔다.
1년 만인 지난 5월 미국은 화웨이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와 거래를 금지하는 새 제재안을 내놓아 화웨이가 독자 설계한 반도체를 TSMC에 맡겨 생산하는 우회로를 차단했다.
이어 이달부터 발효되는 제재를 통해 화웨이가 사실상 모든 반도체를 구할 수 없도록 제재를 극단적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스마트폰, 랩톱, 태블릿PC, 스마트TV, 이동통신 기지국, 서버 등 모든 주력 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반도체 부품을 새로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최종 제재 대상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이 주로 공급하던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부품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내년 초면 일부 비축부품 바닥"
우선 화웨이는 대량으로 비축한 부품에 의존해 위기 국면을 넘기는 것을 도모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화웨이는 미국의 압박에 대비해 최대 2년 치의 핵심 반도체 부품을 비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내년 초면 많은 비축 부품이 동나면서 화웨이가 더는 새 제품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설령 비축분이 충분하다고 가정해도 과거 사 놓은 부품으로 계속 제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업체들과 첨단 제품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화웨이의 시장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 매체 '테크웹'에 따르면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15일 이후 스마트폰 부품 조달 여부를 떠나 화웨이 시장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며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화웨이의 시장 점유율이 내려가는 정도일 것이고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제재는 이제 화웨이의 신작 스마트폰 개발·출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위청둥(余承東) 화웨이 소비자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행사에서 가을 출시될 메이트40이 화웨이가 독자 설계한 치린(麒麟·기린) 계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한 마지막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절판' 소식에 중국 매일경제신문은 1일 선전(深천<土+川>)의 대형 전자제품 판매 상가인 화창베이(華强北)에서 치린 계열 AP가 탑재된 메이트·P·노바 시리즈 스마트폰 제품들이 기존 가격보다 최소 300위안(약 5만원)에서 최대 3000위안까지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화웨이에 이제 가장 절박한 것은 생존 그 자체다.
미국의 제재가 막 시작된 작년 6월 화웨이는 'CES 아시아 2019'에서 "우리는 낙관하고 자신한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3월 연간 사업보고서 발표회에서는 "2020년은 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변화된 상황 인식을 드러냈다.
◇ 화웨이 경쟁력 저하 불가피…시장 재편 계기될 수도
그간 화웨이는 거대한 안방 시장에서 선전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 위축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2분기 스마트폰 5천580만대를 출하해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출하량 5천370만대를 넘어서면서 1위로 올라선 바 있다.
아울러 반도체 공급망 와해는 신규 이동전화 기지국 장비 제작과 기존 설치 장비 유지·보수 업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뜩이나 미국 정부가 화웨이의 제3국 5G 네트워크 구축 사업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고객인 이통사들은 화웨이 네트워크 기술 경쟁력 저하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화웨이가 은연중에 기대하는 것은 11월 미국 대선을 계기로 한 제재 완화 가능성이다.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정부 제재로 화웨이 같은 대형 고객을 잃어 미국 기업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정부에 거래 허가 로비를 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업계 일각에서는 만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 승리한다면 미 기업들이 화웨이에 반도체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부분적인 수출 면허를 내주고 1단계 무역 합의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경제 치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렇지만 조야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미래 기술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5세대 이동통신(5G) 시장을 중국이 선점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데 큰 공감대가 형성된 모습이어서 대선 결과를 떠나 미국 정부의 화웨이 압박 기조가 획기적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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