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X염색체의 힘' 알츠하이머병의 낡은 도그마 깨졌다
X염색체 유전자의 방어 기제 확인…실제론 여성이 더 강해
미 UCSF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 중개 의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노인성 치매의 주범인 알츠하이머병은 지금까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인식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X염색체에 있는 변이 유전자의 영향으로, 여성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도 남성보다 더 잘 견디고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이 유전자에서 풀린 코드로 생성되는 단백질은 알츠하이머병으로부터 뇌의 기억 영역인 해마를 보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염색체는 여성이 'XX', 남성이 'XY'다.
여성은 이렇게 남성보다 X염색체가 하나 더 많아, 알츠하이머병 방어 단백질도 그만큼 많이 생성된다고 한다.
남녀의 이런 성염색체 차이가 알츠하이머병 내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처음 밝혀졌다.
이 연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데나 듀발 신경학 부교수팀이 수행했다.
관련 논문(링크) 26일(현지시간) '사이언스 중개 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실렸다.
논문의 수석저자인 듀발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에 여성이 더 취약하다는 오래된 도그마에 반하는 결과가 나왔다"라면서 "발병 위험이 최고조에 달하는 연령까지 오래 살기 때문에 여성 환자가 더 많기는 하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려도 더 오래 살아남는 건 여성"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X염색체 유전자는 뇌의 학습과 인지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KDM6A다.
이 유전자가 제 기능을 못 하면 발달 지체와 지적 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가부키 증후군'(Kabuki syndrome)이 생긴다.
원래 여성의 X염색체 중 하나는 비암호화 RNA 층에 싸여 '침묵'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소수의 유전자는 이 봉쇄망을 뚫고 나온다는 걸 발견했다. KDM6A도 이런 탈출 유전자 가운데 하나다.
연구팀은 기존의 유전자 발현 데이터를 샅샅이 뒤져 특별히 활성도가 높은 KDM6A 변이형을 찾아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13%, 남성의 7%가 이 KDM6A 변이형을 보유한 거로 분석됐다.
X염색체가 두 개인 여성은 적어도 하나의 KDM6A 변이형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일부는 두 개를 가졌을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KDM6A 변이형을 하나라도 가진 여성은 알츠하이머병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게, 인지 장애 고령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장기 연구 결과 리뷰에서 드러났다.
KDM6A 변이형이 남성에게도 같은 작용을 하는지는 여기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물 실험에선 KDM6A 변이형이 수컷에게 같은 효과를 냈다.
유전자를 조작해 X염색체가 두 개인 생쥐 수컷은, 뇌 안에 다량의 독성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생겨도 대조군보다 뛰어난 인지 기능을 보였고,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이런 효과를 내는 건 Y염색체의 제거가 아니라, 추가된 두 번째 X염색체였다.
실제로 '침묵' 상태의 두 번째 X염색체를 제거한 생쥐 암컷은, 수컷과 비슷한 인지 기능 퇴화를 보였고 오래 살지도 못했다.
듀발 교수는 "성염색체의 숨겨진 역할을 이번 연구에서 알게 됐다"라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X염색체의 방어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면 알츠하이머병 등에 대한 잠재적 내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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