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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우주경쟁 방불케 하는 러시아-서방 코로나 백신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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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우주경쟁 방불케 하는 러시아-서방 코로나 백신 경쟁
러시아, 세계 최초로 자체 개발 백신 '스푸트니크 V' 승인하며 선수
서방, 효능·안정성 문제 제기하며 맹공 vs 러 "경쟁심에 근거 없는 비판"
신뢰성 뒷받침할 임상자료 부족…생명 담보 '전체주의 보건 실험'될 수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추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역병'을 퇴치할 백신 개발에 유일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백신(vaccine)은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항원)를 약하게 하거나 변형한 뒤 인체에 주입해 항체가 형성되게 함으로써 해당 감염병에 저항하는 후천 면역이 생기도록 하는 의약품이다.
백신 개발에서 세계 주요국은 냉전 시절 우주 개발 경쟁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여러 나라 과학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약 140종은 동물시험 단계, 약 20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165종의 백신이 개발되고 있으며, 그중 6종류가 마지막 3차 임상시험 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 중국, 영국 등의 대형 제약사와 연구소들이 백신 개발의 선두권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팽팽하게 진행되던 세계 각국의 치열한 백신 개발 경쟁에서 러시아가 최근 선수를 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1일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식 등록했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백신은 러시아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센터'가 개발한 것으로 겨우 2차 임상시험을 마친 상태에서 국가 승인을 받았다.
백신의 명칭은 지난 1957년 옛 소련이 인류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이름을 따 '스푸트니크 V'로 정해졌다.
개발자 측은 사람에게 감기 등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아데노바이러스를 기반으로 백신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데노바이러스에서 감염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대신 코로나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spike protein) 유전자를 집어넣어 접종 시 인체가 면역반응을 일으키도록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백신 등록 소식에 서방 진영에선 곧바로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통상 수천~수만 명이 참여해 몇개월 동안 진행되는 3차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백신의 효능과 안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3상은 백신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검증 단계로 받아들여져 왔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러시아 정부의 성급한 백신 승인으로 접종을 받을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물론 백신 전체에 대한 신뢰성도 훼손할 것이란 비난도 보태졌다.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최초(여부)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3상 임상시험으로부터 확보된 투명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러시아도 즉각 자국 백신을 옹호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미하일 무라슈코 보건부 장관은 "외국 동료들이 어떤 경쟁심과 러시아 제품의 경쟁력 우위를 느껴, 전혀 근거 없는 견해들을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센터의 알렉산드르 긴츠부르크 소장도 "러시아 백신 때문에 수십억 달러를 잃는다면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나"라고 반문하면서 서방의 반응을 시장 경쟁과 연계시켰다.
가말레야 센터는 스푸트니크 V가 다른 백신 개발에서 이미 많이 연구되고 시험 된 아데노바이러스 벡터(운반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몇백명을 대상으로 한 1, 2차 임상시험에서 효능과 안정성이 충분히 확인됐다는 주장도 폈다.
선전전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러시아는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온 세계가 푸틴 대통령의 딸까지 직접 맞았다는 러시아 백신에 주목하게 만들었고, 러시아가 백신 개발에서 선두에 있음을 과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스푸트니크란 백신 명칭은 러시아 정부가 국가적 자존심과 전 세계적 경쟁의 일부로서 백신 개발 경쟁을 보고 있음을 상기시켜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의학·보건적 측면에서도 러시아가 성공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객관적 평가자들 사이에서도 러시아 당국의 해명이나 반박에 세계 최초 승인 백신에 믿음을 갖게 할 만한 근거자료나 과학적 설명이 담겨있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가말레야 센터가 실시했다고 주장하는 2차 임상시험에 관한 자료조차 찾기가 힘들다.
백신은 특별히 민감한 의약품이다. 충분히 검증된 백신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혹여 성급하게 단행한 푸틴 정부의 백신 승인이 시민의 생명보다 국가의 위신을 앞세우거나, 일부 부작용과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광범위하고 신속한 백신 접종을 통해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을 유도하겠다는 '전체주의적 보건 구상'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cjyo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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