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물러나라"…벨라루스 나흘째 대선불복시위(종합)
경찰 사흘간 최소 6천명 체포…2명 사망, 수백명 부상 후 입원
"25세 청년 무더위에 호송차에 몇시간 갇혀있다 건강이상으로 사망"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유철종 특파원 = "사람들을 끔찍한 내전의 수렁에 내던지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떠나라. 당신은 그저 권력을 원할 뿐이고 당신의 욕망은 결국 피로 물든 채 끝날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참사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일침을 날렸다.
벨라루스 출신의 알렉시예비치는 12일(현지시간) 자유유럽방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1994년부터 벨라루스를 26년 연속 통치하고 다시 6기 집권에 성공한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평화로운 사임을 촉구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벨라루스 경찰이 시위대를 대하는 방식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악마 같다"고 비난하며 러시아로부터 군병력을 지원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루카셴코 대통령의 강력한 맞수로 꼽혀온 정치 신예 야권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를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전직 교사 출신인 티하놉스카야는 대선 출마를 준비하다 당국에 체포된 유명 블로거 세르게이 티하놉스키의 아내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주부였다.
지난 9일 실시한 대선 개표 결과 루카셴코 대통령이 80.0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기를 거머쥐었고 유력한 경쟁 상대였던 티하놉스카야는 10.09%를 득표하는 데 그치자 재검표와 선거 무효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9일부터 나흘 연속으로 루카셴코 대통령이 불법과 편법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그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12일 저녁에도 시위대는 곳곳에서 인간 사슬을 만들어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고,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시위대를 응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도로를 서행하는 차량도 포착됐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 섬광탄, 물대포, 고무탄, 심지어는 실탄까지 발사했으며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 참가자뿐만 아니라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까지 심하게 구타했다.
이날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사법기관 소속 요원들이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군복을 벗어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내무부는 시위 첫째 날 3천여명, 둘째 날 2천여명, 셋째 날 1천명을 체포하는 등 최소 6천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가로 3m, 세로 4m짜리 감방 한 칸에 36∼50명을 가둬놓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앞선 사흘간의 시위 과정에서 최소 2명이 숨지고 250명 이상이 부상해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수도 민스크에서 1명의 시위 참가자가 진압 경찰을 향해 던지려던 폭발물이 자신의 손에서 터지면서 사망한 데 이어, 12일에도 동남부 도시 고멜에서 경찰에 연행됐던 청년 1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고멜 사망자는 시위 첫날인 9일 체포된 25세 남성으로 이 청년은 체포 당일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씨에 경찰 호송차 안에서 몇시간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건강 이상을 호소했으나 경찰이 그를 정신이상자로 판단해 정신병원으로 보내면서 숨졌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청년의 어머니는 아들이 평소 심장병을 앓고 있었으며,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경찰에 체포돼 심한 구타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할수록 루카셴코 대통령을 향한 국제사회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체코 의회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벨라루스를 겨냥해 아직 전체주의가 막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벨라루스 정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을 비판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벨라루스의 대선이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면서 "폭력과 부당한 체포 및 선거 결과 조작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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