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부러워하는 '면역체계 슈퍼스타' 박쥐 게놈 분석 첫 발
'Bat1k' 관박쥐 등 6종, 인간게놈 수준 분석…1천421종 모두 분석 예정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박쥐는 치명적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달고 살면서도 아무런 증상 없이 생존하고, 노화가 더디고 암에도 잘 걸리지 않는 등 인간 입장에서 부러운 '슈퍼파워'를 갖고 있다.
이런 슈퍼파워의 비밀을 풀기 위해 총 1천421종에 달하는 박쥐의 게놈을 모두 분석하겠다며 지난 2017년 출범한 국제 컨소시엄 'Bat1k'가 첫 결과물을 내놨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과학전문 매체 '사이언스 매거진' 등에 따르면 Bat1k 연구진은 관박쥐(Rhinolophus ferrumequinum)를 비롯한 6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 최신호에 발표했다.
박쥐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인간 게놈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이전 것보다 10배 가량 더 완벽해져 인간을 비롯한 다른 포유류 종과 유전자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해 진 것으로 발표됐다.
연구팀은 실제로 관박쥐 등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바다소에서 인간에 이르는 42종의 다른 포유류와 비교했다.
그 결과, 우선 박쥐의 근연종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나무두더쥐나 날다람쥐원숭이, 쥐 등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개와 말, 천산갑, 고래 등으로 진화한 포유류의 공통조상에서 일찌감치 갈라져 나와 독자 그룹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유류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APOBEC3' 유전자군 비교에서는 다른 포유류와 달리 감염에 대한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10개 이상 불능화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질병에 대한 저항력과 관련된 항바이러스 유전자는 추가 복제와 변형이 이뤄져 있는 것도 밝혀냈다.
막스 플랑크 연구그룹장으로 이번 논문의 공동 책임저자인 미카엘 힐러 박사는 "항바이러스 유전자 확대, 독특한 면역 유전자 선택, 염증 관련 유전자 상실 등 박쥐에게서 확인된 이런 변화는 박쥐의 특출한 면역력에 기여하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 박쥐의 게놈 곳곳에서 과거 바이러스 감염 때 바이러스 유전체가 복제되면서 남긴 유전자 조각도 발견됐다면서 이런 "화석화된 바이러스"는 박쥐가 조류만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비롯해 다른 어떤 포유류보다 많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논문 공동 책임저자로 Bat1k 창립 이사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의 엠마 틸링 교수는 "정교한 박쥐 게놈을 통해 박쥐가 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하고 노화를 늦추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이런 게놈 지도는 궁극에는 인간의 노화와 질병을 완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는 박쥐가 진화시켜온 유전적 해결책을 밝혀내는데 필요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Bat1k는 내년에 각 박쥐 과(科)에서 1종씩 27종의 박쥐 게놈을 추가 분석할 예정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연구 결과는 시작일 뿐"이라면서 "남은 1천400여종의 박쥐는 생태나 수명, 감각기관, 면역 등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의 다양성을 보이고 있으며 아직도 게놈 기반과 관련해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예일대학의 로렐 요흐 박사는 사이언스 매거진과의 회견에서 "면역체계의 슈퍼스타인 박쥐를 이해하는 훌륭한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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