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6·25 참전용사 아시나요…누군가에겐 정말 '잊힌 전쟁'
멕시코인 비야레알, 미군 보병으로 참전해 18개월간 전투
멕시코계 미국인 및 멕시코인 10만 명, 미군 소속으로 참전 추정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89)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전날 현지 뉴스에서 본 한국 소식을 먼저 꺼냈다.
멕시코에서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 나라지만 그는 한국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귀를 기울이고, 좋은 소식이면 함께 기뻐하고 안 좋은 소식이면 제 일처럼 안타까워한다.
한국은 그가 스무살 무렵 치열한 18개월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바깥 멕시코주 틀라네판틀라 자택에서 만난 비야레알은 오래 보관해온 군복 입은 사진과 배지들을 꺼내 보이며 희미해져 가는 70년 전의 기억을 조금씩 떠올렸다.
193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비야레알은 4살 때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갔다가 18살 때 홀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입대하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후 얼마지 않아 한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현재 멕시코 국적인 그는 6·25전쟁에 참전한 180만 명의 미군 중 한 명이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부대는 보병 일병이던 그에게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라고 했지만, 가족이 멀리 멕시코에 있던 그는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낯선 전장으로 향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해서 '내가 이곳에서 죽겠구나' 생각했다.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고, 늘 신에게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멕시코는 6·25에 식량과 의료용품을 지원한 30여 개국 중 하나지만, 참전 16개국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참전 미군 중에 꽤 많은 멕시코인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야레알과 같은 멕시코계 미국인들도 있었지만, 1943∼1952년 미국·멕시코간 병역협력협정에 따라 멕시코 국적을 유지한 채 미군에 입대한 사람도 있었다.
참전 멕시코인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최근 브루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는 180만 명의 미군 참전용사 중 10%인 18만 명이 히스패닉이었으며, 이중 2만9천500여 명의 푸에르토리코인과 다른 중남미 출신들을 제외하면 10만 명 이상이 멕시코 참전용사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남미 유일의 참전국 콜롬비아의 병력 5천100명보다 훨씬 많다. 멕시코인들로만 이뤄진 분대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전사자 3만6천574명 중 3천734명은 히스패닉이었다.
미국 깃발 아래 싸운 멕시코인들의 희생은 기억되지 못했다. 전쟁 후 미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멕시코계 미국인들도 있지만, 비야레알처럼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특히 기억에서 멀어졌다. 어디에 얼마나 생존해있는지 파악도 어렵다.
미국에서 비야레알은 이방인이었고 멕시코에서 6·25는 그야말로 잊힌 전쟁이었다.
군대 내에서도 모국어 사용을 금지당한 채 차별에 시달렸던 비야레알은 제대 후 한동안 미국에 거주할 때도 인종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다못해 '미군으로 전쟁에도 참전했다'고 항변해봐도 '멕시코로 돌아가라'는 말이 따라왔다.
고국에 돌아와 한국전 참전 경험을 얘기하면 '베트남전 말하는 것이냐' '제2차 대전에 참전한 것이냐'는 물음이 나왔다.
참전용사 모임도 없고 기념행사도 없어 참전의 기억을 되새길 기회도 없다 보니 70년 전 전장에서의 기억은 조금씩 흐릿해졌다.
대신 어린 시절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은 자녀와 손주들, 그리고 40대의 그가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간 200쪽 분량의 회고록 '한국에서의 한 멕시코인의 기억'이 그의 기억력을 대신한다.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살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비야레알은 '멕시코인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느냐'며 어깨를 두드려주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생전 처음 느낀 맹추위에 얼어붙어 감각이 없던 손과 발, 비가 내리기 전에 고기와 감자를 넣은 수프의 국물을 서둘러 떠먹었던 일 등을 조각조각 기억해냈다.
전쟁의 기억은 사라져가도 한국은 늘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장남인 호세 안토니오 비야레알은 "아버지는 늘 한국 뉴스에 관심을 갖고 가능하면 한국 브랜드 제품을 사려고 하신다"고 전했다.
비야레알은 자신이 싸웠던 한국이 고통을 극복하고 발전한 모습에 기쁘다면서도 "한 형제가 갈라져 싸우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라며 여전한 분단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전쟁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망설여졌다는 그는 자신의 6·25 참전 경험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족들의 설득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12살 증손자까지 비야레알의 인터뷰를 위해 모인 4대 가족은 각자 기억 속 이야기들을 하나둘 보탰다.
70년 가까이 잊힌 전쟁의 잊힌 참전용사로 살았던 비야레알은 한국인이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준 데 대해 오히려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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