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수 있어 5천 더 줬는데" 등록임대 세입자들 '불안'(종합)
임대사업자도 일부 등록임대 유형 폐지로 낭패
국토부 "법령 손질해 선의의 피해 없도록 조치"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정부가 등록임대 정책을 급히 철회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세입자가 피해를 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임대사업자의 의무기간 내 등록 말소를 허용하면서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는 등록임대가 일반 전셋집으로 바뀔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줄이기로 하면서 소급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갑작스러운 일부 임대 유형 폐지로 불이익을 보게 됐다는 불만도 임대사업자들로부터 나온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7·10 부동산 대책에서 4년 단기임대와 8년 장기 중 아파트 매입 임대는 신규 등록을 받지 않는 식으로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국토부는 아직 의무 임대기간이 남아 있는 이들 폐지 대상 등록임대의 집주인이 원하면 과태료를 받지 않고 말소 신청을 받아주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등록임대에 살고 있는 세입자가 자신이 사는 집이 갑자기 일반 임대가 될 수 있다.
작년 서울 은평구의 8년 아파트 장기 임대에 들어간 A씨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이후 자신이 사는 집이 다른 집주인에게 팔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A씨는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이 과태료를 물고라도 중도에 집을 팔 수도 있다고 언급하며 집을 내놓을 때 부동산에 집을 잘 보여주는 내용의 특약을 요구해 응했다"며 "이분 입장에선 바로 등록을 말소하고 집을 팔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집주인이 바뀌면 이 집은 등록임대가 아닌 일반적인 전셋집이 돼 버린다.
향후 8년간 임대 계약 갱신은 꿈도 못 꾸게 됐고 갱신해도 보증금이 크게 뛸 수밖에 없다.
A씨는 이 집을 보증금 3억9천만원에 계약했는데 현재 A씨 거주지의 보증금 시세는 5억원대까지 오른 상태다.
정부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될 것이기 때문에 말소되는 등록임대 세입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하고 갱신 시 임대료 상승폭을 직전의 5% 이하로 제한한다.
정부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 계약이 이뤄진 경우에도 갱신청구권 등을 인정하는 소급 적용을 해 줌으로써 기존 세입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는 집주인이 바뀐 경우에는 적용되기 쉽지 않다.
등록임대에서 말소된 주택을 사들인 새로운 집주인 입장에선 이같은 의무를 이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제나 전월세상한제를 운용하는 법률인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민법 계열 법률이다.
상호 계약에 관한 규율이기에 집주인이 이를 어겼을 때 과태료 등을 부과하는 등 행정적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소송으로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대폭 강화했다. 다주택자 입장에선 등록임대로 돌려놓은 주택을 먼저 처분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등록임대에 대한 세제 혜택이 공시가 6억원 이하 주택에 몰려 임대 등록도 6억 이하 주택으로 쏠림 현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서울 강북이나 경기 지역에서 등록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등록임대 중 말소돼 매물로 나올 주택이 많을 전망이다.
등록임대에서 말소됐지만 집주인이 바뀌지 않은 주택에서도 세입자는 안심할 수 없다.
당정이 협의하고서 작년 공개한 형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한번 인정하는 2+2 형태다.
이렇게 법률이 개정된다면 이미 한두차례 계약을 갱신했던 등록임대 세입자는 등록임대 말소 후 임대차 3법이 시행돼도 추가 갱신을 요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국회와 정부가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마냥 늘릴 수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을 무기한으로 잡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사유재산권 행사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 집주인 입장에선 무조건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이 유리하다.
계약이 갱신되면 임대료 상승폭이 제한되니 웬만하면 새로운 세입자를 맞으면서 임대료를 대폭 올리려 할 것은 당연해 보인다.
등록임대는 다른 일반 임대보다 임대료가 3천만~5천만원 비싸다는 것은 상식 수준이다.
집주인 입장에서 한동안 임대료를 많이 올리지 못하니 시작 시점에 비싸게 받으려 하는 것이고, 세입자 입장에서도 장기간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장점에 용인하는 부분이 컸다.
하지만 정부 정책으로 갑자기 등록임대 효과가 사라지게 되면서 세입자들은 웃돈 주고 들어온 집에서 약속된 임대기간을 누리지도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민간임대특별법 등 관계법령을 고쳐 임대사업자가 등록말소를 신청할 때 임차인 동의를 받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공포돼 올해 12월 시행될 예정인 민간임대특별법에는 임대등록 후 3개월 내 자진말소할 수 있게 하되 임차인 동의를 받게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손질해 폐지될 예정인 유형은 3개월 이후에도 등록말소 할 수 있게 하면서 이 시행시기를 앞당긴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주인이 등록임대 말소를 신청할 때 임차인 동의를 받게 하면 세입자가 보호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도 갑자기 일부 유형이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됐다.
정부는 등록임대 세제 혜택을 축소할 예정이지만 기존 사업자에 대해 소급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제도를 자세히 보면 약속받은 세제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다주택자가 5년간 임대를 유지하면 거주 주택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를 운용해 왔는데, 갑자기 4년 임대가 폐지되면서 세제혜택은커녕 다주택 중과를 받게 되는 사업자가 나올 수 있다.
기존 4년 단기임대 사업자들은 임대 의무기간이 끝나면 등록이 자동 말소돼 5년 임대 기간을 채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 일부 사업자들은 정부가 10년 임대를 유지하면 등록 시점에 따라 양도세 70~100% 감면 혜택을 준다고 했지만 8년 아파트 매입임대를 운영한 사업자는 임대 유형이 폐지돼 10년 임대 기간을 채우지 못하게 됐다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서도 국토부는 "이들 사업자에 대해서도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게 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4년이나 8년이 지나 등록이 말소돼도 이후 5년, 10년 임대기간을 채우면 약속된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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