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2박3일 방한 마무리…남북협력 힘실어주며 北에 '작심발언'
깜짝 선물보따리는 없었다…대화물꼬 못텄지만 트럼프 3차정상회담 띄우기
이례적 최선희 비판…북에 대화복귀 촉구하며 끌려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7∼9일 2박3일의 방한 행보를 마무리했다.
비건 부장관의 이번 방한은 최근 들어 긴장이 고조돼온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대북 메시지에 이목이 쏠렸다. 비건 부장관이 한국을 찾은 것은 부장관 취임 후 처음이자, 지난해 12월 부장관 지명자 신분으로 방문한 이래 약 7개월 만이었다.
지난 7일 미 군용기 편으로 한국에 도착한 비건 부장관은 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세영 1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만났으며 오후에는 국가정보원을 방문했다. 또한 두 차례의 약식 브리핑을 가지며 광폭행보에 나섰다.
9일에는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을 만났다고 국무부가 전했다. 지난해 12월 방한 때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방한에는 미국 쪽에서 알렉스 웡 국무부 대북 특별 부대표 등 극소수가 동행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 기간 대북 대화 재개에 대한 의지와 함께 유연한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남북협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지 입장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견인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맞물려 북한과 여권 일각에서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해온 한미워킹그룹 운영에 변화를 가미, 남북협력 촉진을 통한 북미간 돌파구 마련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방한 기간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비건 부장관이 타전할 구체적인 대북 메시지였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타진할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인할 전향적인 깜짝 선물 보따리는 이번 방한 기간 별도로 없었다.
앞서 비건 부장관의 방한 목전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를 통해 "미국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쐐기를 박은데 이어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도착 당일 이러한 입장을 반복, 찬물을 끼얹으며 방한 기간 북미간 접촉 가능성은 이미 물건너간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방한 당시 북한에 공개적으로 대화를 제안했다가 응답을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던 비건 부장관은 이번에는 북한을 향해 "우리는 북한과 만남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번 주 방한은 우리의 가까운 친구와 동맹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공개적으로 받아쳤다.
또한 현장 발언에서는 빠졌지만 사전 배포 자료를 통해 "낡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있다"며 최 부상을 강하게 비판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도 '협상할 준비가 돼 있고 권한이 있는 카운터파트를 임명해달라'고 촉구하는 등 '작심발언'을 했다.
비건 부대표의 이러한 언급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올해안 진전'을 희망하며 조속한 대북 대화를 견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해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제재완화를 요구하는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상응조치를 얻기 위해서는 행동에 나서라는 대북 압박차원도 깔렸을 수 있다.
'동맹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라는 비건의 설명대로 이번 방한은 한미간 대북 공조 및 각종 현안에 대한 조율에 초점이 맞춰졌다. 비건 부장관이 방한 기간 공개발언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직접 꺼내지 않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제기됐다.
비건 부장관의 이번 방한 자체가 대화 재개의 물꼬를 트진 못했지만, 이 기간 미국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차 북미정상회담 카드를 띄우며 김 위원장에게 손짓을 보냈다.
우리 정부가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선을 앞두고 수세국면 돌파 카드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이 '10월의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를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셈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방한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비건 부장관이 방한 기간 한미동맹의 힘과 남북협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했으며 북한과의 대화에 관여하겠다는 미국의 준비 자세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한미는 비건 부장관의 이번 방한 기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조속한 타결 의지도 재확인했다.
비건 부장관은 9일 방한 때마다 즐겼던 닭한마리 메뉴로 오찬을 한 뒤 일본으로 넘어갔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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