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가능성 없다' 단언 못 한 실종? 일 '납북 의심' 분류
근거 불명확한 일 납북의심자…"오류 확인 25명 대부분 생존"
북 "납치문제 기만성 보여줘"…와다 하루키 "대북 압력 목적"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의 실종자가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 정부가 분류하는 기준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일본 정부가 설명한 '북한에 의한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행방불명자'(이하 '납북 의심자'로 표기)로 분류하는 기준이 불명확하다.
일본 경찰청 관계자는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실종 사례가 납북 의심자로 분류된다며 "실종자 가족이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류 관행을 설명했다.
납치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 실종자 가족이 주장하면 납북 의심자로 분류하지 않지만 납치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면 결국 납북 의심자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물론 상세한 기준이 있다. 하나하나 정밀하게 조사해서 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세부 기준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납북 의심자였다가 납치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사례를 보면 애초 분류 자체가 허술했다는 의심이 든다.
예를 들어 실종자 중에는 발견된 후 '가족관계가 싫어서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고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간 납북 의심자 분류가 잘못으로 판명된 이는 25명에 달한다.
대부분은 멀쩡하게 살아서 발견됐으며 사고로 사망했거나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 경찰이 납북 의심자 중 가족 등의 동의를 얻은 458명의 이름이나 실종 경위 등 정보를 공개했는데 여기서도 이들이 납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근거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납치가 아니라는 결론이 최근에 내려진 도야마(富山)현 실종자 2명을 보면 애초 이들을 납북 의심자로 분류한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들 실종 여성 두 명은 1996년 5월 5일 오후 가족에게 '친구들과 우오즈(魚津)시에 담력을 시험하러 간다'고 말하고 차를 몰고 나섰다.
40∼50㎞ 떨어진 우오즈시에는 1980년대 중반에 폐업한 온천 여관이 있었는데 '유령이 나온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서 호기심에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된 여성은 이날 심야에 친구에게 '우오즈에 있다'고 무선호출기로 연락한 후 소식이 끊겼다.
경찰이 시내와 인근 산간, 바다를 수색했으나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고 '사건에 휩쓸린 것이 아닌가', '북한에 납치된 것이 아닌가' 등의 억측이 나돌았다고 교도는 전했다.
2014년에 '차가 바다에 떨어진 것을 본 사람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으나 당시에는 소문 수준에 그쳤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차가 바다에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올해 초 확보하고 일대를 수색해 차를 발견했다.
북한은 납북 의심자 분류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납북 의심자로 분류된 도야마현 실종자와 관련해 "'납치' 문제의 허황성, 기만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례는 더 늘어났다"고 최근 논평했다.
또 "일본에서는 일정한 수사 기간이 지나고 대책이 없으면 행방불명자들이 자동으로 납치피해자로 둔갑한다"면서 "이는 행방불명자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로 극대화, 국제화해 불순한 잇속을 채우려는 일본 반동들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전문가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경찰청의 이런 움직임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방침과 발을 맞춰 북한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행방불명된 이들에 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공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취재보조: 데라사키 유카 통신원)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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