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 속전속결 통과는 '반중세력 뿌리뽑기' 선언
코로나19·대만 이어 홍콩까지 미중 전방위 충돌 전망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중국이 30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속전속결로 제정해 시행을 위한 초읽기에 들어간 것은 반중(反中) 세력을 뿌리뽑겠다는 강한 의지를 안팎에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29일(현지시간) 홍콩보안법을 이유로 홍콩이 누려온 특별 지위의 일부를 박탈하겠다는 강경대응에 나섰으나 중국은 홍콩보안법 처리를 강행했다.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홍콩보안법을 밀어붙임에 따라 무역 갈등 봉합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증(코로나19) 책임론과 대만문제 등으로 고조된 양국의 갈등은 한층 더 격해질 전망이다. 두 나라는 홍콩 문제를 놓고 상대에 대한 보복 조치를 주고받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 '송환법' 시위 몸살에 홍콩보안법 직접 제정 강수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것은 지난해 홍콩을 뒤흔든 범죄자 본토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지난해 6월 100만명이 참여한 시위 이후 대규모 시위가 수개월간 계속된 끝에 송환법은 무산됐다. 일부 시위대는 반중 구호를 외치고 중국 국기를 짓밟기도 했다.
중국은 이를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홍콩 내 반중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홍콩보안법 입법을 직접 밀어붙였다.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규정한 홍콩보안법은 반중 민주 세력을 공공연히 겨냥했다.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 신문인 '빈과일보'를 운영하는 지미 라이나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 등이 법 시행 이후 줄줄이 체포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중국은 홍콩의 국회 격인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직접 나서 법을 제정하고 이를 다시 홍콩의 기본법에 삽입하는 강수를 택했다. 홍콩 입법회에 법안 입법을 맡겼다가는 지난해의 송환법처럼 시위로 좌절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003년에도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추진됐다가 대규모 시위로 법안이 철회된 적이 있다.
통상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개월마다 열리며 법안은 3차례 심의를 거쳐 통과된다. 법 제정까지 6개월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홍콩보안법은 초고속으로 처리됐다. 지난 18∼20일 전인대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첫 번째 심의를 마쳤으며 이례적으로 일주일 만에 다시 열린 회의에서 2차 심의를 마치고 바로 표결에서 통과됐다.
전인대가 지난달 말 연례 전체회의에서 홍콩보안법 제정 계획을 전격적으로 밝힌 이후 법안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이었다.
홍콩보안법은 홍콩 반환 23주년 기념일인 7월 1일 시행이 유력하다.
◇ 미중 충돌 격화…무역합의 위태로워질 수도
홍콩보안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이미 설전에서 직접 행동으로 비화했다.
법안 통과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홍콩의 자치권 훼손과 인권·자유 침해에 책임이 있는 중국 관리들에 대해 비자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홍콩 문제에서 악질적인 언행을 한 미국 인사들에 대해 비자 제한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안 통과에 임박해서는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 박탈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특혜를 주는 미 상무부의 규정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관세나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지위를 부여해왔다.
미국이 홍콩보안법 표결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지만, 중국은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보란 듯이 만장일치로 홍콩보안법을 가결했다.
미중 양국은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코로나19 확산을 놓고 책임 공방을 벌여왔다. 양국은 홍콩과 대만 문제 등 전방위로 충돌하고 있어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달 앞서 하와이에서 회동했지만 홍콩이나 대만,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문제에서 첨예한 입장 차이를 재확인하는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국가 주권이 걸린 사안에서는 미국에 밀릴 수 없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미국의 홍콩 관련 법안과 제재 추진을 놓고 "중국은 단호한 조치로 반격할 것이며 일체의 결과는 미국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국의 충돌은 1단계 무역 합의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단의 중국 측 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는 최근 포럼에서 중국이 무역 합의를 이행할 능력은 무역 외 이슈에서 미국의 압박 완화를 요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 등의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 대만서 '일국양제' 반감 최고조…중국 압박 강화
중국은 홍콩보안법 제정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내세우지만 홍콩에서는 오히려 일국양제가 사실상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홍콩의 '중국화' 가속으로 '일국'만 남고 '양제'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장담처럼 홍콩의 장기적 번영을 보장하기는커녕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허브 위상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도 홍콩을 지켜보며 불안에 떨고 있다.
대만의 중국 본토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는 홍콩보안법에 대해 중국이 홍콩 주권 반환 후 50년간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하기로 한 약속을 배신했으며 일국양제의 위선을 드러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중국의 일국양제를 내세워 대만을 홍콩 같은 특별행정구로 만들어 국가 통일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꿈을 실현하려 한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연초부터 대만 무력 통일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받아들이라고 대만을 거세게 압박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달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이례적으로 대만과의 '평화통일'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전방위 압력은 대만을 자극하기만 할 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송환법 시위 이후 대만에서 중국 본토와의 통일이나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은 급격히 높아졌다.
대만인들의 중국 정부에 대한 비호감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 4월 설문조사에서 '중국 정부는 대만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답한 사람은 73%로 1년 만에 15% 포인트나 올랐다.
지난달 연임에 성공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일국양제를 거부한다는 뜻을 강력히 밝힌 바 있다. '친중파'로 불리는 국민당마저 최근 중국이 요구하는 일국양제 방안 통일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당론을 모았다.
하지만 중국은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차이 총통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에 대한 압박 강도를 끊임없이 높이고 있다.
중국 군용기는 이달 들어서만 8차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다. 중국 군용기가 대만 인근 공역에서 미군 공중급유기와 대잠 초계기에 가까이 다가서는 도발적 기동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대만 인근에서 미중의 군사적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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