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왜 한국 지켜주냐"…철군·훈련중단 타령한 트럼프
볼턴 회고록 "트럼프 '왜 아직도 한국에 있나'라며 미군철수·방위비 제기"
볼턴 "트럼프, 며칠에 한번씩 같은 노래가사 반복…전세계 여러 동맹 비판"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틈만 나면 '미국이 왜 한국을 지켜주느냐'며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훈련 중단,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입에 달고 산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 자체는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근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시점이어서 '동맹 보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뿌리깊은 부정적 시각이 교착 상태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3일(현지시간) 출간 예정인 볼턴 전 보좌관의 '그것이 일어난 방'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의 미군 주둔에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셀 수 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한반도와 무관한 현안을 다룰 때도 종종 주한미군을 들먹였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 직후 외교안보 고위 인사들과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논의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그런데 왜 우리가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시리아 미군기지 문제를 논의하던 자리에서도 뜬금없이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싸운 뒤 우리가 왜 아직도 거기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공짜로 얻어먹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여러 동맹을 비판했다"고 썼다.
볼턴 전 보좌관은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1945년 한반도의 '일시적' 분단, 김일성의 부상, 한국전쟁, 그리고 한반도 냉전의 의미에 관한 역사를 여러차례 토론했다. 그러나 내가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 명백하다"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영철 당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백악관을 찾아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연합훈련 축소 내지 폐지를 희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훈련을 가리켜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의 낭비'라며 양측이 선의로 협상하는 동안 훈련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워게임 중단'을 선언하자,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볼턴 전 보좌관에게 "6개월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의 항의 때문에 그 훈련들을 거의 취소할 뻔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같은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 방문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직후엔 '짜증'이 절정에 달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으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연습'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왜 한국전에 나가 싸웠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여전히 한반도에 그토록 많은 병력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얼간이(chumps)가 되는 것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이 전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미국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하노이에서 너무 까다롭게 굴었던 게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워게임'에 단 10센트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과 요구는 더욱 구체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4월 백악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대미 TV 수출로 연 40억 달러를 잃고 있으며 미국이 미군기지 비용으로 연 50억 달러를 지출한다며 한국에 더 많은 분담금을 압박했다.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있었던 6월 30일 청와대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돌연 미군기지 비용 문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상황이 평화롭게 되면 아마도 우리는 떠나게 될 것'이라면서 '그저 매우 부자 나라를 북쪽 이웃으로부터 지켜주는 데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같은해 7월 볼턴 전 보좌관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80억 달러(일본)와 50억 달러(한국)를 각각 얻어내는 방식은 모든 미군을 철수한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시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추가 보고에 "이것은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면서 "존(볼턴 전 보좌관)이 올해 10억 달러를 가져왔는데 미사일 때문에 50억 달러를 얻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다음달 아프간 문제 등에 관한 회의 석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서 진행 중이던 연합훈련을 가리켜 "그 워게임은 큰 실수"라며 "우리가 50억 달러 합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거기에서 나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 정신병자(김정은 위원장)와 평화를 이뤄내려고 노력 중"이라며 "우리는 한국에서 무역으로 380억 달러를 잃는다. 거기에서 나오자"라고 주장했다. 당시 훈련도 "이틀 안에 끝내라. 하루도 연장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 인사들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7월 방한 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만나 방위비 분담과 연합훈련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 등을 설명하자, 해리스 대사와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상당히 놀라는 표정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기회만 되면 되풀이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 제기에 볼턴 전 보좌관은 "우리는 이런 주기를 반복해서 참아야 했고 늘 같은 결과로 끝났다"며 "며칠에 한 번씩 누군가 무심코 버튼을 누르면 트럼프는 똑같은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자신의 가사를 반복하곤 했다"고 적었다.
또 볼턴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회담 한 달 뒤 영국 군사학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영 특수부대 연합훈련에 깊은 인상을 받은 장면을 보고 "지난 18개월 동안 누구도 트럼프 대통령을 미군 훈련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웠다"며 "만약 그랬다면 아마도 한반도 워게임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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