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언제 열리나"…브라질 한인들 사회적 격리 장기화로 고통
한인 경제 중추 의류업 기반 흔들…음식점 등 서비스업 "일단 버텨보자"
코로나19 어려움 속에도 한인회 중심 마스크 기증으로 양국 우정 다져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이민 역사 60년이 다 돼가는 브라질 한인사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피해 확산에 따른 강력한 사회적 격리 조치로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피땀 어린 노력으로 이룬 경제 기반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가 하면 일부는 생계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브라질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세계 2위·6위라는 뉴스보다 당장 일터가 사라질 위기의식에 한인들의 마음은 무겁다.
29일 오전(현지시간) 상파울루 시내 봉헤치루 지역의 한인타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겨울 장사'가 한창이지만, 올해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한인타운 진입로를 따라 늘어선 의류업체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라 지난 3월 말부터 2개월 넘게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최근에는 문을 닫은 상태에서 제품을 생산해 온라인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매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온라인 판매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비싼 월세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업체는 끝내 폐업을 선택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의류업에 종사한 최 모(53) 씨는 당국의 휴업령으로 영업을 중단했다가 3주 전부터 공장을 재가동했다. 매장을 열 수 없어 100% 온라인 판매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매출은 전보다 60% 정도 줄었다.
최씨는 "처음 한 달 동안 매출이 '제로'였던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의류업체는 대부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지금 상태로는 온라인 판매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모든 것이 정상화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한인 경제의 주축인 의류업 기반이 흔들리면서 그 여파가 음식점·여행사 등 서비스 업종으로도 미치고 있다.
한인타운 입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유 모(58) 씨는 "배달 서비스로 간신히 버티고 있으나 휴업령이 길어지면서 매출은 예전의 30%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한인 경제의 주축인 의류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다른 업종도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 수요 자체가 줄어든 데다 항공사들이 브라질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나자 일방적으로 항공편을 취소해버리는 일도 잦다고 한다.
한 여행사 대표는 "올해 초부터 불경기로 힘들었는데 코로나19가 덮친 뒤로는 아예 영업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여행사를 20년 가까이 운영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브라질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갈팡질팡하면서 한인들의 어려움을 가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물론 코로나19 환자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늘어나서야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브라질 정부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홍창표 한인회장(45)은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어떤 대책이 시행되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라면서 "6월 중순부터 경제활동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한인사회가 브라질 당국을 상대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인회를 중심으로 기부 행렬이 이어지면서 현지 사회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인회는 지난 3월 24일부터 한인 동포는 물론 보건소, 요양원, 어린이 병원, 경찰서, 상파울루시 등에 마스크와 식료품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한인회장이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북부 마나우스시를 직접 찾아가 시청과 병원에 마스크 1만8천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fidelis21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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