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모범생' 날개 달고 집권2기 여는 차이잉원 대만총통
지지율 70% 넘어 역대 총통 중 최고…오는 20일 약식 취임식
WHO 재진출 등 국제사회 위상 제고 기대감도…중국은 못 마땅
(타이베이·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김철문 통신원 = "차이잉원 정부는 기존의 대만 정부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정부를 운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믿음이 큽니다."
타이베이(臺北) 도심 한복판의 '대만 청와대' 총통부 앞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왕(王)씨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집권 2기 시작을 앞두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총통부 건물 전면에는 '중화민국 제15대 총통·부총통 취임 경축'이라는 대형 글씨가 나붙어 있었다.
2016년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에 오른 차이잉원은 지난 1월 대만 대선에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역대 최다 득표로 연임에 성공, 오는 20일 집권 2기를 여는 연임 총통 취임식을 갖는다.
취임식은 코로나19 확산 우려 탓에 소규모 약식 행사로 치러진다. 차이 총통은 오전 9시 총통부 안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타이베이빈관으로 이동한다.
이후 야외무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행사장으로 들어가 200명가량의 내외 초청 손님과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대만이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모범 지역으로 인정받은 가운데 차이 총통의 지지도는 역대 총통 중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신(新)대만 국책싱크탱크가 최근 1천75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74.5%였다. 작년 말 조사 때보다 20% 이상 급등했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이 넉넉한 과반을 차지한 데 이어 지지도까지 고공행진을 하면서 차이 총통은 역대 어느 대만 총통보다도 안정적인 집권 2기 통치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1996년 대만에서 총통 직선제가 시행되고 나서 리덩후이(李登輝)·천수이볜(陳水扁)·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모두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대체로 집권 2기에 접어들어서는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국정 운영 동력이 크게 약해졌다.
15일까지 인구가 2천300만명에 달하는 대만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440명, 사망자는 7명에 불과했다. 소수의 외부 유입 사례를 빼면 이미 한 달 넘게 지역 내 감염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지역을 대상으로 한 신속한 입경 제한 및 방역 강화 조치와 중앙전염병지휘센터를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방역 조직 운영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대만이 코로나19 방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스크를 공적 의료 물품으로 관리해 '마스크 대란'을 최소화하는 아이디어도 대만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치과 의사 출신으로 중앙전염병지휘센터를 이끄는 천스중(陳時中) 위생부장(장관)은 대만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신대만국책싱크탱크의 이번 조사에서 천 부장 개인의 지지율은 차이 총통보다도 훨씬 높은 93.9%를 기록했다. 거의 모든 대만인이 천 부장이 이끄는 보건 당국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천리푸(陳?甫) 대만 진리대학 교수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 발표회장에서 "이렇게 높은 지지도는 코로나19 방역 기간 행정부가 좋은 성과를 낸 것과 관련이 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방역 성과가 주목받으면서 국제사회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하던 대만의 존재감도 부쩍 커졌다. '미수복 지역'인 대만을 국제사회에 완전히 축출하려는 중국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대만은 먼저 내부를 안정시킨 다음 코로나19로 대혼란에 빠진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 마스크 1천만장을 기증하는 '마스크 외교'에 나서 크게 주목받았다.
대만은 '국제사회에 힘이 되는 대만'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널리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참에 우방인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숙원인 세계보건기구(WHO) 재참여도 이뤄내려 욕심을 내고 있다.
대만은 친중 성향의 마잉주 총통 집권기에 WHO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했지만 독립 추구 성향의 차이 총통 집권 이후 사실상 중국에 의해 다시 쫓겨난 바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의 집요한 압박으로 대만을 '중국 대만'으로 표시하던 세계 항공사 20여곳이 최근 다시 대만 표기를 '대만'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의 이미지가 악화한 반면 대만의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고양된 것과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차이 총통 집권 2기에도 양안(중국 본토와 대만) 관계는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만 독립 문제와 관련해 차이 총통이 '현상 유지' 선언을 넘어서는 과감한 행보에 나설 것인지도 관심이다.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을 강령에 명문화한 민진당 소속이다. 그러나 2016년 집권 이후에는 대만의 실질적인 주권 수호라는 '현상 유지'에 주력하면서 먼저 중국을 자극하는 일을 삼가면서 신중한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격한 대만 독립 추구 언행으로 중국 본토는 물론 우방인 미국으로부터 역내 갈등을 촉발하는 '골칫덩어리'로 인식된 천수이볜과는 차별화된 행보다.
차이 총통 지지 세력 중 일부 강경파들은 헌법을 수정해 대만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차이 총통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이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면 반드시 무력을 사용해 대만을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오래전부터 피력했다. 따라서 헌법 개정 등을 통한 대만 독립 추구 움직임이 가시화한다면 가뜩이나 악화한 양안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차이 총통의 정치적 기반이 한층 공고해지면서 강경 지지 세력에 휘둘리기보다는 현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단 우세하다. 대만은 신남방 정책을 통해 경제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본토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대만 국립중산대학의 장진혁 정치학연구소 교수는 "독립 문제와 관련해서는 차이 총통은 강경 성향이라기보다는 온건 성향에 가깝다"며 "당내 강경파의 압력이 있더라도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고 당권까지 회복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양안 정책 기조를 바꿔나갈 필요는 크지 않아 보인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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