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메리카 퍼스트'에 코로나19 백신 쟁탈전 우려"
폴리티코 "국제 공조 관심없는 트럼프 행정부 탓 세계 피해 커져"
국제보건체계 떠받쳐온 미국 역할 실종·배신에 탄식 쏟아져
멜린다 게이츠 "백신 이용권이 최고액 입찰자에 돌아가는 게 최악의 상황"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커지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에서 그 위상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점점 더 자주 내비치고 있다.
미국은 19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지원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과의 국제공조를 기피하는 기류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4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의 주도로 개최된 코로나19 글로벌 모금행사에도 미국은 이유를 밝히지 않고 불참해 고립주의 성향을 재확인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주,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서 30여개국이 참여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가 세계 백신 쟁탈전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태도는 국제공조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선명하게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2017년 취임한 뒤 미국이 전후에 구축한 다자주의 체계를 하나씩 흔들어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하고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한 데 이어 국제통상 규정을 집행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폴리티코는 미국 우선주의가 보건 분야에서도 고립주의 성향을 보임에 따라 보건 관리들과 외교관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나 국제공조 무시 때문에 코로나19 사태가 불필요하게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개발과 배포를 둘러싼 경쟁을 글로벌 쟁탈전으로 만들어 빈국이 뒤처지게 할 가능성을 주목했다.
이 매체는 "국제현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시각 때문에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이 뒤따를 것이라는 게 그런 우려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독일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기 위해 유력 독일제약사 큐어백을 인수하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큐어백 관계자와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이를 부인했으나 독일 관리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규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내비쳐온 성향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구체적 정황은 코로나19 백신 쟁탈전에 대한 우려와 직결된다.
특히 코로나19 창궐 후 마스크, 장갑 등 의료장비를 둘러싼 글로벌 이전투구가 빚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 주목을 받는다.
폴리티코는 보건 관리들과 외교관들의 말을 빌려 "백신에서 그런 상황이 빚어진다고 상상해보라"며 "확산사태가 길어지고 취약 국가들이 초토화돼 보건 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주의 보건지원 단체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창립자인 멜린다 게이츠는 "백신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 최고액 입찰자에게 이용권이 돌아가는 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전 세계에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어디에나 침투할 수 있다는 게 바로 국제협력이 필요한 이유"고 강조했다.
미국이 약탈적으로 자국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그간 세계질서 수호자로 행세해온 만큼 방관 자체가 악재라는 우려도 나온다.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글로벌 보건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스티븐 모리슨은 "과거 같았으면 미국이 백신 개발에서 투명하고 신속한 계획을 추진하는 데 앞장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슨은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그런 면모를 기대할 수 없다며 미국 고립주의에 따라 국제협력에 공백이 닥칠 것으로 내다봤다.
WHO를 향한 미국의 적대감과 제재성 조치 또한 코로나19 사태에서 두드러진 악재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보건체계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비정부기구, 재단, 소수 국가들의 다자 협력체계 등이 비효율적으로 얽힌 혼합체다. 백신의 생산과 글로벌 배포를 규율하는 구속력 있는 조약이나 메커니즘도 아예 없는 형국이다.
WHO는 수십년 동안 협력, 현안 토의, 기준 설정 등을 위한 글로벌 논의장을 제공해왔으나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에 대한 통제력 부족을 비롯해 아직도 기능이 제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부실 우려가 있는 WHO에 자금지원을 중단하기로 해 추가 타격을 입혔다. 작년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병했을 때 WHO가 중국의 실태 은폐를 사실상 도왔다는 게 그 이유였다.
폴리티코는 외교가에서 백신 쟁탈전 자체가 기우일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백신이 생산돼 배포될 때까지는 12∼18개월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는데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그 시점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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