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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국교 정상화 때 통역 맡았던 中 외교관 지차오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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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국교 정상화 때 통역 맡았던 中 외교관 지차오주 별세
中 지도부는 물론 닉슨 대통령 통역까지 맡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때 중국 지도부의 통역을 맡았던 중국 외교관 지차오주(冀朝鑄)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지차오주는 1970년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비밀 회동을 통해 추진된 국교 정상화 때 양국 지도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통역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부 장관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비밀 회동 당시 저우 총리의 통역관을 맡았으며,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도 통역관으로 활약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통역관을 데려오지 않고 지차오주에게 통역을 맡기는 파격을 연출했다.
지차오주는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 전 마지막 외교 활동이었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 파기스탄 총리와의 회담 때도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1979년 미국 방문 때도 통역을 맡았던 그는 주미 중국 대사관의 이인자 자리에까지 올랐고, 영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91년에는 유엔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그렇게 복잡 미묘한 외교적 상황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929년 중국 산시(山西)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차오주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그는 하버드대에서 화학을 공부할 당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힘이 되겠다며 중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954년 제네바 회담 때 중국 대표단에 참가하면서 중국 외교부에 이름을 올리게 됐고, 이후 20년 동안 저우언라이의 통역사로서 활동했다.
지차오주는 2008년 자서전을 발간했지만, 미·중 국교 수립의 역사적 현장에서 활약했던 것에 비춰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SCMP는 "지차오주의 자서전은 전체주의 시대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며 "그는 만년에 미·중 관계가 급속히 악화하는 것을 보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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