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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코로나'라고 부르는게 인종차별이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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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코로나'라고 부르는게 인종차별이 아니라고요?
차별·혐오 배격하는 독일의 높은 감수성…아시아인은 사각지대
아시아인 혐오문제, 언론이 많이 다루지만 정치·사회적 주요의제 '아직'
가해자들의 적반하장격 태도도…독일 지도자들, 프랑스인 혐오엔 경고했는데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경찰관이 '육체적인 폭력을 가하지 않은 채 '코로나'라고 비웃는 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다'라고 해 말문이 막혔습니다."
지난 26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발생한 인종차별 사건의 피해자 한국인 유학생 부부에게 취재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다.
남녀 외국인 무리는 유학생 부부에게 "해피 코로나" 등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성희롱적인 언행을 보였다. 이들은 증거 자료를 남기기 위해 부부가 영상을 촬영 중인 휴대전화도 강제로 빼앗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유학생 부부를 밀치는 등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 유학생 부부에게 침도 뱉었다.
당시 출동한 경찰관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사건 접수에도 소극적이었다가 주독 한국대사관 측이 개입하고 나서야 사건을 접수했다.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경찰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은 독일 사회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낮은 감수성을 엿보게 한다.
독일 언론은 아시아인을 상대로 한 혐오 사건에 대해 보도를 많이 해왔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서 코로나19 확산 사태 후 벌어지는 혐오와 연대의 치열한 싸움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문제가 차지하는 자리는 협소하다.
아직 이 문제가 정치·사회적인 주요 의제로 올라가지 못한 채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아시아인이 극우세력까지 가담해 형성되는 새로운 혐오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 유대인·난민 혐오에 맞서 연대…호른바흐 사태 속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 한계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사에 대한 반성 속에서 인종차별, 혐오 문화에 대한 사회적 백신을 꾸준히 맞아왔다. 정치교육 등을 통한 사회적 노력 속에서 감수성 지수는 서유럽 내에서도 독보적이다.
특히 반(反)유대주의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용납을 하지 않아 왔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만행에 대한 죄의식과 전체주의 사회로의 회귀를 막으려는 단호한 의지의 산물이다.
유대인을 상대로 한 폭력과 테러가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바짝 긴장해왔다.
대통령과 총리 등 지도자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꿈틀거리는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 혐오 및 증오 문화에 맞서 시민들이 연대해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독일이 2015년 이후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이후 난민을 상대로 한 혐오와 테러 등이 잇따르자 독일의 지성 사회가 내는 경고음은 더욱 커져 왔다.
최근 몇년 간 반난민·반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아 급성장한 극우세력을 상대로 시민사회는 연대의 가치를 내세워 맞섰다.
형법으로 증오와 혐오 발언에 대해 법적 처벌을 해오던 독일은 2018년부터 소셜미디어상의 증오와 혐오 발언에 대해서도 삭제하도록 하는 법 조항을 마련했다.
그러나 독일 사회는 이민자 사회 내에서도 소수인 아시아인 차별 및 혐오 문제에 대한 낮은 감수성은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지난해 독일 기업 호른바흐가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광고를 내보낸 뒤 독일 사회의 반응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호른바흐의 광고는 정원에서 땀 흘려 일한 백인 남성들의 속옷이 진공 포장돼 도시의 자동판매기에서 판매되고, 이를 구매한 아시아계 젊은 여성이 속옷의 냄새를 맡으면서 신음을 내고 황홀해하는 장면을 담았다.
당시 한국 유학생들과 교민들이 중심이 돼 비판 운동을 전개해 공론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독일의 일부 정론지에서는 광고에 인종차별주의적인 의도가 깔려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한국인이 독일 문화에 익숙지 않아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 아시아인들이 겪는 차별적 경험에 대한 독일 사회의 낮은 민감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다행히 독일광고위원회가 인종차별적 광고라고 판단한 뒤 호른바흐는 문제가 된 광고를 내렸다.
아시아인을 상대로 한 물리적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독일 사회의 반응은 유대인 대상 사건과는 뚜렷이 달랐다.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했던 지난 2월 초 베를린에서 중국인 여성이 대낮에 길에서 머리채를 잡히며 발길질을 당했다.
이에 독일 정론지에서는 아시아인 혐오를 경계하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인종차별을 당한 한국 교민을 상대로 한 인터뷰 기사들도 나왔지만, 혐오 현상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 알려지지 않은 차별 많아…교민사회 일각, 아시아인 연대 모색
이번 한인 유학생 부부에 대한 인종차별 등 폭력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봤지만, 독일 사회는 아직 잠잠하다.
특히 베를린 경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홈페이지에 실은 보고서에서는 가해자들의 적반하장격인 주장도 담겼다.
당시 도망가다가 경찰에 잡힌 여성 2명이 유학생 부부로부터 "인종차별주의자"라며 모욕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독일에서는 상대를 '나치'라고 표현하는 등 혐오스러운 존재로 규정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의 리포트와 달리 유학생 부부가 보여준 현장 영상에는 외국인 무리의 인종차별적인 언행이 계속되자 부인이 "이런 것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아느냐"라며 주의를 주는 상황이 나온다.
가해자들이 혐오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는 독일 법을 악용하기 위해 사실을 호도한 것으로 보인다. 인종차별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 '2차 피해'를 준 뒤 합의를 종용하는 현상도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악화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과 혐오 문제에서 빙산의 일각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교민들이 운영하는 무료상담 카카오 오픈채팅서비스인 '우리'(Uri)에는 차별과 혐오를 당한 교민들의 사연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
한 교민은 이웃 주민에게서 "너 같은 코로나 때문에 피해를 본다"며 이사를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차에서 한 남성이 교민을 향해 "코로나"라고 외치며 창밖으로 칼을 내보이며 흔들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길을 걷는 중 "코로나"라는 말과 함께 병이 날라왔다는 교민의 사연도 있었다.
마트나 길에서 "코로나"라는 말을 들었다는 교민은 부지기수다.
이번에는 유학생 부부가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면서 한국에서라도 공론화가 됐다. 언론 보도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아시아인 혐오 문제가 얼마나 사회적 의제가 될지도 미지수다.


교민 사회 일각에서는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에서 독일 언론은 앞다퉈 한국을 전 세계적으로 민주국가의 방역 모범 사례로 다뤘다.
독일에 있는 한국인들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지만, 일상에서 혐오의 항바이러스제로 작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인 혐오' 정서가 강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내에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 및 혐오 정서가 비등해졌다. 한국인도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진 베를린 정치+문화연구소장은 29일 통화에서 "일상의 인종주의도 심각한 인종주의라는 독일 내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아시아인을 새로운 타깃으로 하는 황색 미디어와 일부 극우세력의 의도가 결합될 위험성이 염려된다"면서 "아시아인이 차별의 대상이 아닌 연대의 주체로 인식되도록 더욱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교민사회 일각에서는 한국인도 사실상 중국인으로 인식되는 상황에 대해 억울해하거나 중국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인의 연대를 통해 풀어보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는 한국학 학자들과 중국학 학자들이 연대하고, 독일의 대학 사회가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호른바흐 광고 사태 때도 광고 속의 모델은 배경 등을 감안할 때 일본인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교민들은 일본인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인의 문제로 인식해 총대를 메고 연대를 보여준 셈이다.
독일 사회가 혐오에 맞서려는 아시아계에 어떤 연대를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독일 사회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혐오와 연대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초기 방역 실패로 대량 확산을 막지 못했지만, 이후 질서정연하게 대응해가면서 사회 내 증가하는 타자에 대한 혐오 정서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최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발생한 프랑스인에 대한 혐오 사건을 놓고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지역 지도자들은 지난 11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며 연대를 호소했다.
프랑스인 혐오 사건은 언어폭력과 침 뱉기가 있었지만, 유학생 사건과 비교해보면 다른 물리적인 폭력은 없어 상대적으로 경미해 보였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특별 TV 연설을 통해 "여러분들이 매일 보여주는 연대는 미래에 더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 이후 일부 교민들은 독일 지도자들의 입과 지성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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