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판자촌 수십채 철거 강행…봉쇄령에 오갈데 없어
정부 중지 명령에도 집주인들 '월세 안낸다'며 무자비한 단전·단수
"10년 연금 모아 지은 집인데 수 분 만에 무너뜨려" 철거민 분통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봉쇄령을 시행하는 가운데 빈민촌 판잣집 수십 채에 대한 철거까지 강행하는 바람에 가난한 사람들이 오갈 데 없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24일 로이터통신과 현지매체 더시티즌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 정부는 봉쇄령 상황에서 세입자 퇴거 중지령을 내렸지만 집주인들이 아랑곳하지 않아 오히려 주택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많은 세입자가 지난 3월 27일 이후 봉쇄령 이후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가운데 일을 하거나 집세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판자촌 거주민이나 세입자들은 전기, 물 같은 기반 서비스도 끊기거나 집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인권단체들이 밝혔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으로 여섯 아이와 함께 요하네스버그 도심 안에서 생활하는 엄마 드보라(가명)는 "애들이 캄캄한 가운데 살고 있다"면서 집 주인이 4월 초 자신이 월세를 못 내자 단전과 단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애들은 나만 쳐다보고 난 수지를 맞추느라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거리에서 헌옷을 팔며 생계를 이어왔으나 5주간의 봉쇄령 돌입 이후 이마저 할 수 없게 됐다.
활동가들은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흑인밀집지구 타운십의 밀집한 판잣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금전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날품팔이 등 비공식 부문은 전체 노동력의 18%다.
현지 봉사단체 '사회정의연대'의 악소릴레 노티왈라 사무총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든 불평등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시 당국들에 모든 퇴거와 단수 조치를 봉쇄령 해제까지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봉쇄령 돌입후 집주인들이 전국에서 약 80가구에 집세를 못 낸다며 내쫓거나 불법으로 단전·단수 조치를 했다고 현지 구호단체인 '법률자원센터'가 전했다.
이달 초 당국도 케이프타운, 더반, 에쿠르훌레니 등 도시에서 판잣집 철거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주 케이프타운 카옐리차 타운십에선 최소 49채의 판잣집이 철거돼 법률자원센터가 시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시장 직속 인간거주위원회의 말루시 부이 위원은 철거된 판잣집은 빈집이고 불법 건축물이라면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불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그러나 지난 17일 케이프타운 고등법원은 시 당국에 주민들에게 건축자재를 되돌려줘 철거된 집을 다시 지을 수 있게 하라고 판결했다.
노티왈라 사무총장은 철거된 판잣집들은 많은 경우 봉쇄령에 실직해 월세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쇄령 시작 이틀 전에도 요하네스버그 시는 집세를 못 내 단수 등에 내몰린 주민들에게 다시 물과 전기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집주인들은 다시 연결된 물과 전기 공급마저 끊어버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집주인들은 법적으로 세입자 기반시설을 법원명령 없이 훼손하지 못하게 돼 있다.
비영리 단체인 '남아공 난민·이주민 컨소시엄'의 아비가일 도슨 홍보담당관은 이렇게 피해를 본 세입자의 다수는 비공식 경제에서 일하며 간신히 월세를 내던 난민, 망명신청자, 이주민이라고 말했다.
컨소시엄 등 단체들은 강제퇴거 문제를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조정위원회에 가져가려고 하지만 봉쇄령에 위원회마저 문을 닫고 이메일도 답변해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소웨토 지역 출신 연금생활자인 새뮤얼 모케셍은 자신이 10년간 모은 연금으로 에너데일 근처 레이크뷰 비공식주거지에 집을 마련했으나 정부 하청을 받는 철거업자인 소위 '붉은 개미들'이 몰려와 단 몇 분 만에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다 법적으로 하소연할 데도 없다. 봉쇄령에 정부가 사전 경고도 없이 철거를 허용해 오갈 데도 없어 울분이 터진다"고 덧붙였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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