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무너지는 수출…고용안정·기간산업 대책 담대하게 내놓길
(서울=연합뉴스) 관세청이 21일 발표한 이달 1~20일 수출 실적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글로벌 '대봉쇄'에 직격탄을 맞아 전례 없는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수출액은 작년 동기대비 26.9% 줄었고, 조업일수 등을 감안한 일평균 수출액은 16.8% 후퇴했다. 수출의 급전직하는 글로벌 수요부진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승용차는 각각 14.9%와 28.5% 감소했고, 특히 무선통신기기(-30.7%)·자동차부품(-49.8%)·석유제품(-53.5%) 등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핵심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 미국으로의 수출은 17%와 17.5% 뒷걸음질 쳤고, EU와 베트남으로의 수출은 각각 32.6%와 39.5% 격감했다. 이런 흐름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아무리 우량한 수출 기업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제품을 생산해본들 재고만 쌓이지 않겠는가. 정부는 어려움에 직면한 수출 기업 지원을 위해 지난 8일 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36조원 규모의 무역금융 만기 연장 등의 방안을 내놓았으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수출의 '급멈춤'이 언제 풀릴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당장 부도를 모면하고 고용과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기업들의 경영난은 대면 접촉으로 매출이 일어나는 여행, 음식·숙박업, 항공업 등 서비스업에서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간 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항공사를 비롯해 조선, 해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기계, 건설 등 기간산업은 그간 숱한 난관 속에서도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아 일자리를 유지하고 창출하면서 우리나라가 제조 강국, 무역 대국의 위상을 키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아왔다. 이들 업종의 선도 기업에서 문제가 생기면 1, 2차 협력업체를 포함한 전후방 산업이 도미노 위기에 몰리면서 고용과 투자, 소비, 생산, 금융 등 경제 전반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생존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적어도 작년 말 기준으로 부실 등의 문제가 없었던 기업이라면 코로나 쇼크가 진정될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놓고 봐야 한다. 물론 무작정 돈을 퍼부을 수는 없다. 지원 조건으로 최대한의 고용 유지나 대주주·경영진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무역금융 만기 연장 외에도 채권시장안정펀드, 저비용항공사 지원 등의 구제책을 내놨으나 대기업의 자금난에 숨통을 트기 위한 대책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지원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경쟁국과 견주어 너무 소극적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매출 절벽으로 기업의 부실 속도가 빨라지고 3월엔 취업자가 20만명 가까이 감소해 실업대란이 현실화했다. 좌고우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정부는 국책은행을 동원해서든 한국은행을 통해서든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의 직접 매입 방안 등을 포함한 담대한 자금 투입을 검토해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재정을 통한 자본 확충과 지급보증으로 국책 금융기관과 한국은행의 행동반경을 넓혀야 한다. 실업자나 고용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한 재정 동원에도 과감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에서 재정 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었는데 민생 보호나 일자리 유지·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라 곳간 사정이 악화하더라도 이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19의 경제·사회적 충격을 '3차 세계대전'에 비유하면서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으며 첫째도 둘째도 국난극복'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22일 열릴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대통령의 이런 상황 인식에 걸맞은 특단의 고용안정과 기간산업 대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