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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르포] 멈춰선 도시…기약없는 일상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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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르포] 멈춰선 도시…기약없는 일상 복귀
마스크 착용은 여전히 보기 힘들어…일부 노인층 착용
확진자 5만 넘어…시민 75% "통행제한령 내려도 좋다"
경찰 순찰 강화…가정폭력 늘고 성범죄·절도 줄어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수도 베를린의 거리는 쓸쓸해 보였다.
길고 긴 겨울을 보낸 끝에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고 낮 기온이 14도까지 올라갔지만, 대다수 시민은 집 천장 아래 머물러 있었다.
집 안에서 갑갑함과 지루함을 견뎌내고 있을 테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래야 하는 절박감 속에서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2인 초과 접촉 금지령'이 내려진 지 나흘째인 지난 26일 오후 마우어파크(장벽공원).
자유분방한 다문화의 상징인 이곳은 햇살이 따사로울 때면 곳곳에서 '버스킹'(거리공연)이 벌어지는 등 활기가 넘쳐왔다.
그러나 이날은 일부 시민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적막을 깼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접촉 제한 조치 탓인지 대부분 혼자이거나 2명이었다.

매주 일요일 베를린 최대 벼룩시장이 열리는 공원 옆 부지는 황량해 보였다. 벼룩시장은 코로나19 사태로 4월 19일까지 열리지 않는다.
공원 안 그라피티 작업이 이뤄지는 벽에 여러 예술가가 작업하고 있었다. 그라피티 중에 '골룸'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캐릭터인 골룸이 반지 대신 두루마리 화장지를 두손 위에 소중하게 올려놓고 있었다.
골룸의 유명한 대사로 '마이 프레셔스'(My Precious·나의 보물) 장면을 빌려와 최근 독일에서의 화장지 사재기 풍조를 풍자한 작품이었다.
한 중년 여성이 골룸의 미니어처를 그라피티 앞에 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2m 정도 간격을 둔 채 예술가나 사진작가냐고 물었더니 취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닌단다. 이 그라피티가 요즘 유명세를 치르자 찍으러 왔단다.
이름이 타마하 후티라는 여성은 자신이 사진을 올리는 인스타그램을 기자의 수첩에 적어주겠다며 기자에게 바짝 붙자 부지불식간에 한 발 뒤로 뺐다.
그러자 후티 씨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마우어파크 인근에는 경찰이 지속해서 순찰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접촉 금지 규정을 잘 지키는 분위기였다. 다만, 마우어파크 앞 거리에서 5∼6명의 10대 초·중반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시민들이 북적이던 마우어파크 앞 카페들은 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문을 닫고 있었다.
앞서 독일 정부는 지난 16일부터 생필품점과 약국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점 운영을 금지했다.
나아가 지난 22일에는 접촉 제한 조치와 함께 음식점과 카페의 운영을 중단하도록 했다.
여기에 상당수의 회사는 가능한 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각급 학교도 문을 닫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등 유력 인사들은 "집에 머물러 달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데다 접촉 제한 조치까지 더해지다 보니 베를린의 도심 거리는 한산했다. 차량도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전과 비교해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독일 시민의 대다수는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는데, 이날 길거리에서 가끔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보였다. 대부분 노인층이었다. 마트에서도 이전보다 마스크를 쓴 시민이 눈에 더 띄었다.
이날 독일 매체 RND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부인인 김소연 씨가 며칠 전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히자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평소 관광객이 북적이던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은 마치 새벽 풍경처럼 비어 있었다. 경찰차 인근에 3∼4명의 경찰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평소 쇼핑객들이 많은 쿠담 거리도 한산했다.
백화점들은 문을 닫았고, 옷가게 등 상점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 앞 광장에만 일부 시민이 서로 거리를 둔 채 앉아 있었다.
도심 버스와 트램에는 아예 한 명의 승객도 태우지 않은 채 운행하는 경우가 꽤 보였다. 승객이 많은 버스도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독일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는 최근에서야 순조롭게 적용되는 듯해 보인다.
상점 운영 조치 제한 후 베를린 경찰은 단속에 나서 지난 26일까지 운영 중이던 763개의 상점에 대해 문을 닫도록 조치했다.
베를린 경찰은 접촉 제한 조치와 관련해 24시간 순찰 체제를 가동 중인데, 경찰 22명이 감염 진단을 받아 비상이 걸렸다.


독일에서는 공원에 대해서도 폐쇄 조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좀처럼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확진자 수는 27일 밤 5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최근 며칠간 매일 4천∼6천여 명의 신규 확진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독일 당국은 현 상황에 대해 "폭풍전야"라며 조치를 완화할 시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민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베를린에 이전과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일간 베를리너차이퉁에 따르면 최근 가정폭력이 평상시와 비교해 10.8% 늘었다. 절도와 성범죄는 각각 7.5%, 19.2% 감소했다.
접촉 제한 조치와 관련해 여론은 우호적이다.
공영방송 ARD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5%가 접촉 제한 조치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독일 전역에서 통행 제한령을 내리는 문제에 대해 75%가 찬성했다.
자신의 자유가 제약되더라도 코로나19 사태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의지, 절박감이 큰 셈이다.
lkb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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