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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경색될라…한은 양적완화 돌입
윤면식 한은 부총재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경제충격 더 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정수연 기자 = 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비상 처방을 꺼내 든 것은 단기자금시장 경색을 막고 코로나19에 도산 위기로 몰린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한은의 조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과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 훨씬 클 전망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내달부터 석 달 간 매주 환매조건부증권(RP) 매입을 실시해 금융회사의 수요 전부를 매입할 것이라고 26일 발표했다. 무제한 RP 매입은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때에도 전례가 없는 조치다.
매입대상도 국채, 통화안정증권,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 수출입은행의 수출입금융채권, 은행채 등에서 8개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늘렸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이를 두고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QE)는 금리가 제로(0)로 떨어진 후 더는 수단이 없을 때 돈을 공급하는 방식이라 한은의 지원제도와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면서도 "시장 수요에 맞춰 유동성을 전액 공급한 것을 양적완화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한은이 전례 없는 조치를 내놓은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충격이 금융위기 이상으로 크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기업 지원 및 증시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1차 대책과 이번 대책을 합친 긴급 구호자금이 100조원 규모라고 정부는 밝혔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5일 "위기 차단에 필요한 모든 정책을 선제적으로 준비해달라"고 말하는 등 여권도 한은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은으로서도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과거 금융위기 당시 대책 이상의 특단의 유동성 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27일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액한 데 이어 이달 16일엔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전격 인하하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19일엔 미국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체결 계획을 발표했다. 19일부터 24일 사이엔 국고채 단순매입과 비금융권 대상 RP 매입으로 총 5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긴급 투여했다.
금융위기 시절 사용했던 긴급 대책 중 상당수가 한 달이 안 되는 사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윤 부총재는 현재 경제충격의 크기에 대해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선 모두가 그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라며 "(1997년) 외환위기 땐 위기가 아시아 일부에 한정됐고 한국에 구조적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때 충격보다 더 클지는 지나 봐야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은의 이번 조치는 단기 자금시장과 회사채 시장에 신용 경색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미국 주가지수와 선물지수가 폭락하자 해외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국내 증권사들이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통지)을 받게 됐다. 마진콜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렸을 때, 주가 하락에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증거금을 더 부을 것을 요구받는 상황을 뜻한다.
증거금 요구를 받은 증권사들이 기업어음(CP)을 대거 처분해 단기 자금시장에서 유동성 경색이 발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융시장에서의 주가, 채권가격, 원화가치가 동반 하락하고 있고, 단기 유동성 부족 우려가 커졌다"면서 "한은의 사실상 양적완화 정책은 유동성 우려를 상당 부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10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의 주요 지원 주체인 정책금융기관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점도 정책의 배경이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한은이 시중에 풀 자금 규모는 금융위기 당시(28조원)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윤 부총재는 "유동성 공급 규모는 추정을 하기 어렵다. 시장이 필요한 자금을 제한 없이 전액 공급하는 방침만 결정됐다"면서도 "이번에 (RP 대상증권으로) 추가된 대상증권은 발행 규모로 봤을 때 70조원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얼마나 매입 요청이 들어올지는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한은의 지원 제도는 금융기관이 유동성을 걱정하지 말라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조치"라고 말했다.
js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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