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파격조치마다 폭락장…"제로금리·QE, 2008년식 낡은 처방"
글로벌 유동성 공조에도 도미노 폭락장세 또 되풀이…'실탄'만 낭비한 꼴
"연준, 할수 있는 일 다했다"…CP·회사채 매입 '슈퍼 양적완화론'까지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급 대응책을 쏟아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벌써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0.00~0.25%로 무려 1.00%포인트 파격 인하하고, 7천억 달러의 양적완화(QE) 정책도 재개했다. 일요일 오후, 예정에 없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표결을 거친 결과다.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 일본은행, 캐나다중앙은행, 스위스 중앙은행도 달러 유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스와프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조치도 잇따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즉각 반색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싸늘했다. 16일(현지시간) 아시아권 증시는 일제히 하락세로 마감했고, 유럽과 미국 증시는 또다시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3% 가까이, 3,000포인트 무너졌다. 글로벌 '최종대부자'로서 막대한 달러 발권력을 자랑하는 연준으로서도 더이상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할 처방전이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연준은 지난 3일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했지만, 다우지수는 785.91포인트(2.94%) 급락했다. 유동성 공급을 대폭 늘린 지난 12일에도 다우지수는 2,352.60포인트(9.99%)의 낙폭을 기록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를 설립한 '헤지펀드 대부' 레이 달리오는 소셜네트워크 링크트인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연준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면서 이제는 연방정부의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시장 심리의 근저에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본질적으로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아닌, 공중보건 위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실물경기 전반이 바짝 위축된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투입한다고 해서 경제주체들의 소비나 투자가 살아나긴 어렵다는 것이다.
브리클리 투자자문의 피터 부크바는 CNBC 방송에 "연준이 유동성 바주카포를 쐈다"면서도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돈다발이 바이러스를 치료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시간과 백신만이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와 금융시장의 반등은 결국 '백신 개발'에 달렸다는 의미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을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차원으로 기대치를 낮추더라도, 연준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명 경제학자인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도입한 정책조합은 지금의 위협에 맞춰 디자인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낡은 무기가 아닌, 2020년 팬데믹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 극복의 양대 카드로 꼽혔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로는 경제적 충격이 경감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WSJ은 사설에서 "금리를 1.0%포인트 인하한 결정은 유용하지 않다"면서 "돈값은 이미 싸다. 바이러스의 추이에 대한 불확실성이 투자와 차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기침체 전망 속에 기업체의 자금흐름에 패닉이 있는데, 연준의 2008년형 무기들이 해결해줄지에 대해선 큰 의문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는 향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운용의 폭만 좁혀졌다는 것이다.
당장 시장에서는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실물 위기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기업체를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기존의 양적완화를 넘어서는 '슈퍼 양적완화론'이다.
미국 내 소매업계나 에너지, 항공·운수업계에선 파산 위기에 직면한 기업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증권의 마크 카바나 전략가는 AP통신에 "많은 기업의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어음(CP)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CP 매각이 안 된다면, 결국은 구조조정을 하거나 심지어 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CP와 회사채의 매입 한도도 각각 1조엔씩 늘리기로 했다. 일본은행의 CP와 회사채에 대한 기존 매입 한도는 각각 2조2천억엔, 3조2천억엔이었다.
다만 연준 규정상 국채나 MBS 이외에 CP 또는 회사채 같은 민간 위험자산을 매입하기는 어렵다. 결국 의회 차원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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