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제2 우한' 이탈리아에 국경봉쇄 반대…감시는 강화
이동자유권 강조하며 "伊 스스로 봉쇄하라" 요구
주변국, 발열감시 등 '유입 지연' 노력…항공편 등 교통제한 움직임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이탈리아가 '중국 밖 우한'으로 불릴 정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국경 봉쇄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다만 인접국에서는 발열 감시를 도입하거나 일부 항공편을 중단하는 등 유입 차단대책도 속속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9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는 유럽 국가들이 원칙적으로 이탈리아 국경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비스 총리는 "(다른 국가가 아닌) 이탈리아가 자국민들이 유럽을 돌아다닐 수 없도록 금지해야 한다"며 "솅겐 조약 때문에 우리는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소수 비회원국 등 26개국은 솅겐 조약에 따라 여행객이 비자나 여권 검사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국경을 열어두고 있다.
체코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탈리아의 위기가 자국으로 전이되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중국이 우한을 물리적으로 봉쇄한 것과 같은 국경차단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스위스는 자국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노동허가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왕래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스위스 남부의 이탈리아 언어권인 티치노 주에서 노동허가를 받은 이탈리아인들은 무려 7만명에 달한다.
스위스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코로나19가 발병한 이탈리아 북부에 가지 말 것을 권고하지만 국경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물자가 오가고 국제열차도 정시에 운행되고 있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오스트리아도 국경 검문소 등지에서 이동 검사반이 여행객들의 건강을 점검하고 있으나 국경을 폐쇄하고 있지는 않다.
오스트리아 서부에 있는 티롤의 귄터 플라터 주지사는 "코로나19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바이러스를 억제해 시간을 버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슬로베니아는 공항과 국경 검문소에서 이동자들을 상대로 건강 검진을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이란에서 온 이들을 코로나19의 최장 잠복기로 여겨지는 14일 동안 격리한다는 방침이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가까운 프랑스 몽제네브르의 스키 리조트에는 주말에 여전히 방문객들이 몰리고 현재까지는 당국도 이렇다 할 별도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방에서는 중국 당국이 우한에 강행한 것과 같은 강력한 봉쇄책이 시행되는 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국가들에서 시민들뿐만 아니라 당국도 개인의 자유를 엄중하게 여기는 까닭에 조치가 나오더라도 얼마나 엄격하게 집행될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국가들이 지금까지는 국경봉쇄에 저항하고 있으며 이동의 자유를 거의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보좌진은 국경을 봉쇄하는 게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최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특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데올로기와 방역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 산라파엘레 병원의 미생물·바이러스 학자인 로베르토 부리오니는 WSJ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모든 유럽 시민들이 개인자유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강하지만 우리가 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선임 연구원인 옌중황은 "바이러스가 덮친 지역에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동원하는 차원에서 중국의 톱다운 접근법이 상당히 효과적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서방국가들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옌중황은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중국의 경험에서 나온 조치들이 시행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우한 봉쇄와 같은 강력한 조치가 유럽에서 이뤄질 가능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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