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선에서 선전하고도 서글픈 아랍계 정당
역대 '최다 의석' 예상되지만 우파 리쿠드당 승리에 우려
중도 청백당 간츠 대표의 팔레스타인 '강경행보'에도 실망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지난 2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아랍계 정당들이 뛰어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활짝 웃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총선 투표를 99% 개표한 결과, 아랍계 정당들의 연합인 '조인트리스트'는 15석을 얻는 것으로 집계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끄는 우파 리쿠드당(36석)과 중도 정당 청백당(33석)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로이터통신은 조인트리스트가 역대 아랍계 정당들 가운데 이스라엘 의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아랍계 정당들의 연합은 2015년 총선에서 13석을 차지했고 작년 9월 총선에서도 13석을 얻었다.
이번 총선에서 아랍권 유권자들의 투표 열기도 뜨거웠다.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에 따르면 지난 2일 총선에서 아랍계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64.7%로 추정돼 1999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아랍권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작년 4월 총선에서 49.2%, 9월 총선에서 59%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상승했다.
이스라엘에서 약 21%를 차지하는 소수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정치적 힘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에서 아랍인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직업 등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이 크다.
아랍계 유권자들의 단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구상이 영향을 준 것으로 외신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29일 미국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이스라엘에 편향된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의 반발을 샀다.
이 구상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이스라엘이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요르단강 서안의 합병을 추진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위기감이 커진 조인트리스트는 아랍계 유권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우파 정권을 저지하자며 총선 투표를 독려했다.
이런 노력으로 조인트리스트의 의석은 늘었지만 기뻐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는 4일 "조인트리스트가 기록적인 성과를 냈지만, 그 흥분은 네타냐후 총리의 약진으로 빛이 바랬다"고 지적했다.
아랍권 매체 '알모니터'도 지난 3일 "이스라엘의 아랍계 정당들이 쓰라린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의 보수 집권당인 리쿠드당이 총선에서 1위를 하면서 네타냐후 총리가 다시 총리 후보에 지명될 공산이 크다.
네타냐후 총리가 연임할 경우 팔레스타인 분쟁 등 중동정책에서 강경책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랍계 정당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라이벌인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에도 크게 실망했다.
간츠 대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평화구상을 이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팔레스타인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이에 조인트리스트는 지난 2월 간츠 대표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간츠 대표도 연립정부 구성에서 아랍계 정당들을 배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계 정당들은 작년 9월 총선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간츠 대표를 총리 후보로 지지한다고 밝혔었다.
이스라엘 의회의 아랍계 의원인 유세프 자바린은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아랍인들은 우리에게 신뢰를 표현했고 우리는 극단적인 우파와 싸울 것"이라면서 "청백당은 진정한 대안이 아니고 희망을 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랍계 정당들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의석이 늘더라도 연립정부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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