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연금개편안, 노동계 반발 속 의회심의 개시
42개 직종·직역별 연금을 단일연금체제로 개편 추진
과반 여당에 맞서 야당 '지연전략' 택해
노조 총파업 재결의 효과 미미…지하철·열차운행 차질 거의 없어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하원이 노동계의 강한 반발 속에 정부의 퇴직연금 개편안을 17일(현지시간) 본회의에 올려 본격적으로 심의에 들어갔다.
여당은 내달 지방선거 전까지 정부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다는 구상이지만, 야당들이 지연전략을 택해 여당의 구상대로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하원 본회의에 제출된 정부의 연금개편안은 현재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 체제를 포인트제를 기반으로 한 단일 국가연금 체제로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프랑스 정부는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직역별 특수연금을 없애 연금체제를 평등하게 바꾸고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맞게 연금제도를 다시 설계해 국가재정의 부담을 줄인다는 구상이다.
현 연금 시스템을 그대로 둘 경우 2025년에 연금적자가 170억 유로(22조원 상당)에 이를 것으로 프랑스 정부는 추산한다.
하지만 노동계와 의회 좌파진영에서 정부의 구상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프랑스 노동계는 정부안에 대해 "더 오래 일하게 하고 연금은 덜 주겠다는 것"이라면서 작년 12월 초부터 지난달까지 50일 가까이 파업을 벌였다.
중도성향의 여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는 내달 15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전까지 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여당이 하원의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야당들이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 총 4만1천 곳의 수정을 요구해 사실상 법안 통과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가 계속 미뤄질 경우 정부·여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 후 제1 국정과제로 밀어붙인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처럼 의회 심의를 우회하는 '법률명령' 형태로 정부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에서 법률명령은 의회의 정규심의를 거치는 일반적인 법률 제·개정과 절차와 달리 법안이 대통령의 위임입법 형식으로 추진돼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하며, 의회의 사후승인만 거치면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
이 방식은 법안의 의회 심의를 크게 단축해 정부가 국정과제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가적 긴급과제가 아니면 잘 쓰지 않는 방식인 데다 '대통령이 의회 민주주의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편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이날 연금개편안의 하원 전체회의 상정에 맞춰 연금개편 반대 총파업을 또다시 결의했지만, 파업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작년 12월부터 연금개편 반대 총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철도노조와 파리교통공사(RATP) 노조가 이날을 '검은 월요일'로 만들자면서 파업을 결의했지만, 조합원의 참여율이 높지 않았다. 파리의 지하철과 수도권 철도 운행도 파업에 따른 차질은 거의 빚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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