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최고 꽃가루 매개 곤충 호박벌 기온 올라 대멸종 위기
북미서 한 세대만에 반토막…감소세 "대멸종과 일치"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호박벌은 꿀벌보다 더 크고 뚱뚱한 몸의 털에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꽃 사이를 날아다녀 야생 최고의 화분 매개 곤충 중 하나로 꼽힌다. 토마토나 호박, 딸기류 등의 수정에서는 꿀벌마저 압도한다.
이런 호박벌이 지구 기온상승에 따른 '혼돈의 기후' 속에 한 세대 만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며 대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현재와 같은 감소세가 지속하면 불과 수십 년 안에 많은 종(種)이 사라질 것으로도 예측됐다.
캐나다 오타와대학 생물학과 제레미 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 100여년의 북미와 유럽지역 호박벌 기록을 분석해 얻은 이런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를 통해 발표했다.
오타와대학에 따르면 연구팀은 북미와 유럽지역 호박벌 66종에 관한 자료 55만건을 토대로 1901~1974년과 2000~2014년 사이에 기온 및 강수량 변화에 따른 호박벌의 분포와 다양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두 기간 사이에 호박벌이 북미지역에서는 46%, 유럽에서는 17%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특히 기온이 오른 곳에서 호박벌 개체 수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으며, 기후변화 예측치를 통해 호박벌의 개별 종은 물론 전체 개체의 변화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논문 제1저자인 박사과정 대학원생 피터 소로이는 호박벌이 "대멸종과 일치하는"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면서 "날씨가 더워지고 가뭄이나 열파 등 극한 기후가 잦아져 두 대륙에서 호박벌의 대량 멸절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류는 소행성 충돌로 공룡시대가 끝난 이후 가장 크고 급속한 생물 다양성 위기인 제6차 대멸종에 진입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호박벌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기온 상승을 꼽았지만 살충제 남용과 토지개발에 따른 서식지 감소 등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살충제와 서식지 감소도 호박벌의 개체 감소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기르는 꿀벌의 경우 2018년 4월부터 1년 사이에 미국에서 봉군이 40.7%나 감소했는데, 살충제 사용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돼 있다.
소로이 연구원이 소속된 실험실을 이끄는 커 교수는 기후변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선 호박벌이 열기를 식힐 수 있는 나무나 관목 등 피난처가 될 수 있는 곳을 유지함으로써 기후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구팀은 호박벌 멸종위기 분석을 위해 개발된 방법이 호박벌뿐만 아니라 파충류나 조류, 포유류 등 다른 종의 멸종 위험도를 평가하는데도 일반적으로 응용할 수 있어 멸종위기 평가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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