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 화해 못보고 떠난 신격호…별세 직전까지 마음고생
후계구도 정리 때 놓쳐…마지막까지 일선 활동, 말년 송사 휘말리기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이신영 기자 =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주요 재벌그룹 창업주 중 거의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활동한 재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꼽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경영의 끈을 놓지 않고자 한 그의 집념과 욕심은 결국 롯데그룹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형제간 경영권 다툼의 씨앗이 됐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 "아들도 환갑인데…" 때 놓친 후계구도 정리
신 명예회장이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화해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은 생전에 지분 상속을 통해 후계구도를 확실히 정리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
2017년 롯데지주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일 양국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율이 대부분 엇비슷했다.
이 때문에 롯데그룹 계열사의 경우 신동주·동빈 형제 가운데 한쪽이 계열사 지분 매입에 나서면 시장의 관심이 한꺼번에 쏠리곤 했다.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향년 99세 / 연합뉴스 (Yonhapnews)
실제로 경영권 분쟁이 터지기 전인 2013년과 2014년 신 전 부회장이 롯데제과 주식을 수차례에 걸쳐 꾸준히 매입해 지분율을 3.92%까지 높였다.
신동빈 회장과 신격호 명예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율은 각각 5.34%와 6.83%였다.
주력계열사인 롯데쇼핑 지분도 경영권 분쟁 직전까지 신동빈 회장 13.46%, 신동주 전 부회장 13.45%로 차이가 0.01% 포인트에 불과했다.
한일 양국 롯데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역시 ▲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 ▲ 종업원지주회 27.8% ▲ 관계사 20.1% ▲ 임원 지주회 6% ▲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 가족 7.1% ▲ 롯데재단 0.2% 등이다.
신동주·동빈 형제의 개인 지분은 각각 1.62%, 1.4%다.
이에 대해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를,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를 경영하도록 암묵적으로 후계구도가 정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광윤사·직원지주조합·관계사 및 임원지주조합에 나눠놓은 것은 능력으로 임직원에게 지지를 받아야 진정한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 명예회장이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고 신동주·동빈 형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균형을 맞춰 한쪽으로 후계구도가 쏠리지 않도록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경영권 분쟁 이후에도 "후계자가 누가 되는 거 그런 거…나는 아직 10년, 20년 일 할 생각"이라며 경영에 대한 욕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나이를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경영 욕심에 후계자 선정 타이밍을 놓쳤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다른 관계자는 "아들들도 환갑인데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계속 경영에 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명예회장) 본인이 경영권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욕심이 결국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정후견인 지정·실형 선고…별세 직전까지 마음고생
이처럼 경영권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했던 신 명예회장은 결국 분쟁을 겪는 장남과 차남이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신동주·동빈 형제의 본격적인 다툼이 알려지게 된 2015년 7월 27일 신 명예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과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롯데홀딩스를 찾았다.
고령의 신 명예회장이 롯데홀딩스를 찾은 것은 거의 10년 만이라는 게 롯데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신 명예회장은 이튿날인 28일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장악한 롯데홀딩스 이사진에 의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당한 채 귀국했다.
이후 신 명예회장을 둘러싼 신동주·동빈 형제의 여론전은 수위가 높아져 갔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동생 신동빈 회장이 창업주인 신 명예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끌어내린 것을,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고령의 아버지를 대동하고 일본행을 감행한 것을 비판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은 "연로한 아버지를 하루에 두 번이나 비행기를 태워 한국과 일본을 오가게 하다니, 가족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롯데 관계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둘러싼 형제의 다툼은 결국 신격호 명예회장의 정신건강 이상설로 번졌다.
신 전 부회장은 신 명예회장이 당시 고령임에도 경영 현안을 직접 챙길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신 명예회장의 상태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줄곧 '건강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온 롯데그룹과 신 회장 측은 입장을 바꿔 그가 치매를 앓고 있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신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한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와중에 신 전 부회장은 인터뷰와 동영상 녹화·음성 녹취 등을 통해,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 측의 동향을 알리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언론플레이'를 이어갔다.
신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를 둘러싼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2016년 12월에는 그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씨가 신 명예회장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어 성년후견인이 필요하다며 법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결국 법원은 오랜 심리 끝에 그에 대해 한정후견인을 지정했다.
중증 치매 등으로 정상적 판단이 어렵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신 명예회장의 고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롯데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로 촉발된 '롯데 사태'는 결국 신 명예회장 부자에 대한 기소로 이어졌고 1심 선고공판에서 신 명예회장은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록 고령 때문에 법정 구속되는 수모는 겨우 면했지만, 재계 5위의 기업을 일군 '재계 거목'에게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었다.
경영권 승계를 놓고 골육상쟁을 벌였던 두 아들이 끝내 화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눈을 감은 것도 신 명예회장에게는 '말년의 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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