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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합의 포기' 카드꺼낸 유럽, 여객기격추로 위기몰린 이란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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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합의 포기' 카드꺼낸 유럽, 여객기격추로 위기몰린 이란 압박
이란 지도부, 잦아진 반정부 시위로 국내서도 '궁지'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유럽 측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서명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이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했다.
이 절차는 핵합의 당사국 중 어느 한쪽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때 이에 서명한 7개국(이란 포함)과 유럽연합(EU)의 대표가 모인 공동위원회에서 위반 여부를 논의하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위반했다고 결정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안건을 보내 핵합의의 유효성을 놓고 최종 표결을 거친다.
즉, 이들 유럽 3개국은 이란이 핵합의를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최악의 경우엔 핵합의를 포기하고 핵협상이 타결된 2015년 7월 이전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을 공식화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 보리스 존스 영국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제안한 '새로운 핵합의'에 동의하는 터라 핵합의의 명운은 더 위태로워졌다.
이들은 이란이 지난해 5월부터 핵합의 이행 범위를 5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한 점을 문제 삼았다.
2018년 5월 미국이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유럽 3개국은 정치적으로는 이에 반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이란과 교역, 투자를 사실상 중단했다.
핵합의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핵프로그램을 제한·동결하는 대신 원유 수출 등 이란에 경제적 이득을 보장하는 원칙으로 작동된다.



이란은 유럽마저 핵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자 지난해 5월 핵합의 이행 범위를 점차 줄여 유럽에 이란산 원유 수입과 금융 거래를 재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유럽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이란은 이달 초 핵합의로 제한한 우라늄 농축 관련 제재(농도, 생산량)를 모두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분쟁조정 절차 개시에 대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4일 "법적으로 근거가 없고 정치적 관점에서도 전략적 실책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란 외무부도 "유럽이 이 절차를 남용하려 한다면 당연히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의 모든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유럽이 핵합의 분쟁 조정 절차를 내비친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시점은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로 큰 위기에 휘말린 이란 지도부의 현재 처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간 핵합의 문제에선 이란이 명분상 우위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하고 유럽이 이란에 약속한 경제 교역을 끊은 뒤에도 이란은 1년간 준수하면서 핵합의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의 실질적 행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합의 이행 축소 역시 서방이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이란이 핵합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조처였다.
그러나 여객기 격추라는 뜻하지 않은 '초대형 악재'가 이란을 강타했고, 이란은 국제적 고립을 피하려면 서방과 유일한 교집합인 핵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절실한 입장이 됐다.
이번 유럽 3개국의 조처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는 등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과 협상 테이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이란 지도부로선 국내 상황도 좋지 않다.
2009년 대선 부정선거 시비로 불거진 테헤란 대학생의 대규모 반정부·반체제 시위 이후 이란에서는 지도부에 맞서 눈에 띄는 시민의 집단행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1월 약 2주간 민생고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했고 지난해 11월 휘발유 가격 인상에 따른 반정부 시위에 이어 두 달 만에 다시 이란 시민은 거리로 나와 지도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지도부에 불만을 표출하는 집단행동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진압하는 군경의 발포에 시민이 상당수 숨졌지만 이란 당국은 처음엔 함구하다 나중에서야 "무장 폭도가 보안 시설에 접근하려 해 발포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번 격추 사건 뒤 시민의 분노가 희생자 규모가 아닌 '거짓말'로 모인 것은 이런 지도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11월보다 규모가 작지만 이란 체제 유지의 핵심인 혁명수비대까지 규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란 지도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018년 1월과 지난해 11월 시위가 벌어졌을 때 이란 지도부는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외국 정보기관에 사주받은 '폭도'의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무력으로 진압했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 없는 혁명수비대의 실책으로 발발한 이번 시위에 이란 당국은 이전처럼 강경하게 대응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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