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시위 90일째…고속도로·은행서 또 충돌(종합)
시위대, 고속도로 막고 은행 ATM기 부숴…'정치공백·경제위기' 항의
아운 대통령 "30년간 잘못된 정책의 대가"…하리리 전 총리 "새 정부가 IMF와 협력해야"
(카이로·서울=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김서영 기자 = 지난해 10월 이후 90일째 이어진 레바논 시위가 14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와 인근 고속도로 등 곳곳에서 또다시 격화했다.
고속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차량 운행을 차단하면서 정치적 공백 상태를 끝낼 것을 정치권에 촉구했다고 레바논 매체 '데일리스타'와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위에 참여한 쿠사이 조아비(21)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체 지배 계급을 물러나게 할 것이고 우리 행보는 그때까지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세 자녀의 엄마인 라일라 유세프(47)는 AFP에 "우리는 더는 참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도로를 막았다"고 밝혔다.
베이루트에 위치한 중앙은행 인근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사했으며 시위대도 돌과 화염병, 빈 최루가스 통 등을 던지거나 쓰레기를 불태우며 맞대응했다.
군경이 공중에 실탄을 쐈으며, 복면을 한 젊은 시위자가 은행 출입구와 자동입출금기(ATM)를 부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시위에 참여한 한 20대 대학생은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은 은행과 중앙은행의 정책 때문"이라면서 "이것이 더 이상 돈도 없고, 물가는 계속 오르는 이유"라고 분노했다.
로이터통신은 현재 레바논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상승했으며, 은행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많은 시위 참가자가 군경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다쳤으나, 정확한 사상자 집계는 나오지 않았다.
이날 베이루트뿐 아니라 북부 트리폴리와 남동부 하스바이야 등 다른 도시들에서도 빠른 내각 구성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시위를 근본적으로 촉발한 경제 위기가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아운 대통령은 14일 TV로 방영된 연설에서 "레바논은 30년 동안 누적된 잘못된 경제·금융 정책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산업, 농업 등에서 생산하기보다 빌리는 경제에 의존했고 부패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새 정부 구성이 장애물들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레바논에서는 작년 10월 29일 사드 하리리 총리가 시위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를 발표한 뒤, 차기 정부가 꾸려지지 못하고 있다.
아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진통 끝에 전 교육부 장관 하산 디아브를 새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하리리 전 총리가 속한 수니파 정파 '미래운동'이 새 내각 참여를 거부하는 등 정파 간 이견 속에 디아브는 새 내각을 아직 구성하지 못했다.
시위대는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기술관료들로 구성된 내각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하리리 전 총리는 이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과의 경제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차기 내각이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리리는 "정부가 시행하길 바라는 어떤 경제적 조치도 WB나 IMF 및 다른 국제기구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면서도 그 주체는 차기 내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의 요구에 따라 물러난 전 정부가 아니라 의회의 신임을 얻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새 정부만이 국제기구와 협정을 진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파가 다양한 레바논은 독특한 권력 안배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각각 맡고 있다.
레바논은 국가부채, 실업률, 통화가치 하락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국가부채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0%나 될 정도로 심각하고 청년층 실업률은 30%가 넘는다.
AFP는 레바논에서 지난 몇 달 간 시위가 이어지면서 실업자가 늘고 많은 사람의 월급이 줄었다고 전했다.
지중해 연안 국가 레바논은 면적이 한국의 경기도와 비슷할 정도로 작고 중동에서 지하자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겪으면서 국토가 많이 황폐해졌고 2006년에는 이스라엘과 약 한 달 동안 전쟁을 치렀다.
nojae@yna.co.kr, s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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