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걸프 지역, 이란 '보복 타깃' 될라…예의주시
사우디·UAE "자제, 긴장 완화 해야" 촉구
작년 9월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시 美 소극적 대응에 '실망'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이 3일 이란 군부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데 대해 이란이 '가혹한 보복'을 경고하면서 걸프 지역의 친미 수니파 국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걸프 지역은 이란 남부에 집중된 혁명수비대의 미사일 기지와 가까운 데다 이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 수출로인 호르무즈 해협 역시 사실상 이란군이 통제한다고 볼 수 있어 이란의 군사 조처에 매우 취약한 탓이다.
카타르와 오만을 제외한 걸프 지역 국가는 이란에 정치·외교적으로 적대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 종파적으로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린다.
특히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미국이 이란에 대해 매우 강경한 적대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미국 본토까지 직접 다다를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한 이란으로서는 걸프 지역에 포진한 친미 진영을 '가혹한 보복'의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이 직접 타격하지 않더라도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과 같이 예멘 반군이 '대리 공격'을 할 수도 있다. 예멘 반군은 이미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공항과 군기지를 수차례 무인기와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적 있다.
새넘 바킬 런던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AP통신에 "지금이야말로 중동 도처에 있는 이란의 대리군이 이란에 대한 지지를 보이라고 요청받는 시점이다"라며 "중동 전문가들이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경고했었다"라고 말했다.
예멘 반군, 레바논 헤즈볼라 등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조직이 걸프 지역과 같은 미국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대리 표적'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과 각 무장조직의 관계는 그간 분리됐었지만, 이제 국가를 초월해 연결될 수 있는 국면이다"라며 "친이란 무장조직간 조율된 대응은 아마 전문가들이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걸프국가들은 (미국과 이란간 충돌의) 잠재적인 악영향과 자국의 사회와 경제를 해칠 위험을 분명히 매우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벌어진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폭사 뒤 이런 위험성을 즉각 감지한 걸프 지역 국가는 잇따라 긴장 완화와 자제를 촉구했다.
사우디 정부는 3일 국영 SPA통신에 "사우디는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라며 "사우디는 상황을 악화하는 모든 행위를 멀리하려는 자제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우디는 국제사회가 중동과 전 세계의 안보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게 전화로 이번 솔레이마니 사령관 폭격이 외국에 있는 미국인을 보호하려는 단호한 조처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안와르 가르가시 UAE 외교담당 국무장관도 이날 긴장과 반목보다는 지혜와 온건, 정치적 해법으로 중동에서 더 긴장이 고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 작전'에 공개적으로 반색한 데 반해 걸프 지역 국가들이 자제를 촉구한 것은 그간 미국이 이들 우방에 이란의 위협을 앞장서 맞서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과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9월 사우디의 핵심 석유시설이 폭격받아 사우디의 산유량이 일시적으로 반 토막 나는 전 국가적인 위기를 맞았을 때 미국은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면서도 사우디를 대신해 군사적 억지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안드레아 크리그 연구원은 "지난해 9월 사우디의 석유시설이 파괴적인 미사일과 드론에 공격받았을 때 미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자 사우디와 UAE는 어떻게 해서든 이란과 대치를 피하려고 더 유화적인 정책을 택했다"라고 해설했다.
이란이 공격한다면 이들 국가의 석유시설과 같은 직접 이익을 훼손하기보다 이곳에 주둔한 미군 기지로 제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정학적 관계로 볼 때 이란이 미국과 대립때문에 걸프 지역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크리그 연구원은 "UAE, 사우디는 이라크의 최근 전개 상황을 아주 걱정스럽게 지켜봤고 이란이 자신의 영토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응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라며 "바그다드의 미 대사관이 공격당했을 때 걸프 지역은 모두 규탄했지만 폭력의 나선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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