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조지아인 살해' 관련 러 외교관 2명 추방…러, 보복예고(종합2보)
메르켈 "러시아 당국, 사건 수사 협조안해"…러 "비우호적, 근거없는 결정"
(베를린·모스크바=연합뉴스) 이광빈 유철종 특파원 = 독일 정부가 자국에서 발생한 조지아인 살인 사건과 관련해 배후로 의심되는 러시아의 외교관 2명을 추방 조처했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보복 조처를 예고해 양국 간의 관계가 경색될 전망이다.
4일 슈피겔온라인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외무부는 러시아 당국이 이번 살인 사건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같이 조처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가 살인 사건을 명백히 조사하는 데 협조하지 않아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서 "다음 주에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추방 이유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된 러시아 외교관 2명은 7일 내로 독일을 떠나야 한다.
슈피겔온라인은 이들이 러시아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 소속의 정보원이라고 전했다.
독일 정보당국은 외무부에 살인 사건과 관련해 추방해야 할 외교관으로 이들을 지목했다.
러시아는 지난 8월 발생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국적의 젤림한 한고슈빌리(40) 살인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한고슈빌리는 베를린 시내 공원인 티어가르텐에서 인근 이슬람 사원으로 가던 중 총상을 입고 숨졌다.
독일 경찰은 권총과 소음기를 버린 뒤 전동 스쿠터를 타고 현장을 벗어나려던 러시아 국적의 남성 1명을 체포하고 조사 중이다.
한고슈빌리는 1990년대 중반 러시아와 체첸 간의 전쟁 당시 체첸 편에서 싸운 데 이어 우크라이나 및 조지아의 정보기관에 러시아 스파이에 대한 정보를 넘겨줬다.
3년 전에 독일로 넘어와 망명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한 채 임시 체류 중이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베를린주(州) 검찰은 러시아 당국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잡은 뒤 이날 국가 안보 문제를 다루는 연방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조지아인 살인 사건에 러시아가 개입돼 있다는 추정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는 "독일 언론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고 해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도 인테르팍스 통신에 "독일 측 주장은 근거 없고 비우호적"이라며 "수사 문제에 대한 정치적 접근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외무부 관계자는 AFP 통신에 "우리는 일련의 보복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독일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분 무력 개입 및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유럽연합(EU)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해오면서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보여왔다.
다만, 미국의 반발 속에서도 러시아와의 천연가스관 연결사업인 '노르트 스트림 2'를 진행하는 등 일정 부분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대연정 소수파로 중도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 내부에서도 러시아가 안보를 위협하지만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앞서 지난해 영국에선 전직 러시아 스파이에 대한 독살 기도 사건이 발생했고, 영국 당국은 GRU를 배후로 지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외교관 100여명을 추방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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