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승리일까 쿠데타일까…모랄레스 퇴진에 엇갈린 시각
쿠데타 여부 놓고 볼리비아 안팎 의견 극명히 갈려…
"군의 퇴진 '권고'를 무력 사용으로 볼지가 관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시민들의 힘으로 불법 정권을 몰아낸 민주주의의 승리일까, 아니면 군이 합법 정부를 몰아낸 쿠데타일까.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사퇴를 발표한 이후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볼리비아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중남미 등 주변국에서도 철저히 이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내놓고 있어 볼리비아 안팎의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난 2006년 취임한 모랄레스 대통령의 퇴진을 촉발한 것은 지난달 20일 대통령 선거였다.
4선 연임에 도전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일찌감치 승리를 선언했으나 석연찮은 개표 과정을 둘러싸고 야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3주째 불복 시위가 이어졌다.
부정은 없었다며 버티던 모랄레스 대통령에 결정적인 '한 방'이 된 것은 전날 군 수장의 퇴진 요구였다.
몇 시간 전 미주기구(OAS)가 선거 부정을 시사하는 감사 결과를 내놓을 때만 해도 재선거를 치르겠지만 사퇴는 하지 않겠다던 모랄레스 대통령은 군이 나서서 사퇴를 요구하자 백기를 들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사퇴 발표 과정에서 자신이 쿠데타의 희생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남미 안팎의 좌파 지도자들도 이에 동조했다.
대표적인 좌파 정권인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은 곧바로 모랄레스 퇴진을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멕시코 중도좌파 정권도 "군이 헌법 질서를 어긴 채 대통령에 퇴진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쿠데타"라고 말했다.
반면 우파 성향의 정부는 이를 쿠데타라고 보지 않고 있다.
익명의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AP통신에 볼리비아 상황은 쿠데타가 아니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모랄레스 대통령의 퇴진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서반구 민주주의에 중요한 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 우파 정부들도 쿠데타라는 규정을 하지 않은 채 볼리비아의 안정을 촉구하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볼리비아 야권도 선거 부정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정부를 시민의 힘으로 몰아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권 대선 후보였던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은 모랄레스 대통령 퇴진을 이끈 것은 군이 아니라 민중의 봉기였다고 말했다.
퇴진까지 이른 과정으로만 보면 쿠데타이냐 아니냐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쿠데타는 무력으로 정권으로 빼앗는 것을 뜻한다. 볼리비아 군이 모랄레스 대통령에 사퇴를 '권고'하는 행위 자체를 무력 사용으로 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모랄레스 퇴진 이후 남은 질문은, 이것이 민주적 의지에 따른 것이었는지 쿠데타였는지 여부"라며 "과연 민주주의가 회복된 것인지 아니면 무너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볼리비아와 중남미에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쿠데타인지의 여부는 대체로 의미론적인 문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존 폴가-헤시모비치 미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AP에 "볼리비아 군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구두로 선언했다"며 "이를 위협으로 본다면 쿠데타이고, 위협이 아닌 단순 권고를 본다면 쿠데타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기관 미주대화의 마이클 시프터는 군이 정권을 차지하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모랄레스 퇴진에 있어 군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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