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베를린 장벽'…탈출로 땅굴만 70여개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베를린 장벽의 건설은 당시 서독 정부가 펼쳐온 대(對)동독정책과 외교정책이 실패한 결과물이다.
서독 정부는 전승국의 하나로 독일 문제에 개입할 권한을 가진 소련과의 대화에 소홀히 했다.
서독 정부가 베를린을 둘러싼 소련의 위협과 요구를 등한시하던 중 결국 1961년 8월 13일 새벽 1시부터 동서베를린 경계에 소련군과 동독군의 전차가 배치된 가운데 동독 경찰과 직장 민병대가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
며칠 뒤부터는 콘크리트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동서베를린을 가르는 장벽은 43㎞였다. 서베를린을 둘러싸고 155㎞의 길이에 장벽 등 경계선이 명확히 생겼다.
동서베를린의 경계 폭은 15∼150m였다.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 전 동베를린에는 장벽이 세워질 수 있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이를 우려한 일부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탈출했다.
장벽이 세워졌을 때 동서베를린 경계에는 수 없는 탄식이 나오고 눈물이 흘렀다.
동서베를린 경계지역인 베르나우에르 스트라세 거리의 아파트 창문에서 동베를린 시민들이 서베를린 소방관들이 쳐 놓은 그물로 뛰어내리는 장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아파트 창문에 매달린 여성을 방안에서 동독 측 관리가 팔을 잡아당기고 길 아래에서 서베를린 소방관이 발을 잡아 끌어내리는 장면도 전 세계에 타전됐다.
동독 경비병이 아직 올라가지 않은 장벽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장면 역시 장벽의 비극을 전해주는 사진으로 남아있다.
장벽이 완전히 세워진 후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탈출 시도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5천 명은 탈출에 성공했다. 동독 경비병을 포함해 140명이 숨졌다.
베를린 장벽 외에 동서독 국경을 통해 탈출한 이들은 4만 명에 달했다.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기 위해 파놓은 지하터널이 70여 개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터널을 이용해 300여 명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했다.
동독 당국은 초음파 장비로 지하터널을 찾아 파괴하기도 했다.
베를린에서는 지난 7일 지하터널 중 하나를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장벽 건설에 사용되는 비용은 1970년까지 1억 동독 마르크 정도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장벽을 경비하던 동독 측 병력은 28년 동안 총 1만1천 명에 달했다. 경비병이 총구를 겨누고 있던 감시탑은 300여개에 달했다.
장벽으로 동서베를린 간의 도로는 끊어졌다가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 당일 8차선 도로가 양측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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