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0조원 풀린다는 中수입박람회…돈의 힘 과시한 '경제 열병식'
명품 루이뷔통부터 中 차단된 페이스북까지…글로벌 기업 3천700개 집결
시진핑-마크롱과 다정히 와인 건배…美 대중 포위망 균열 상징 분석도
일각선 실제 수입 증가 효과에 의문도…대기업·중소기업 반응 '온도 차'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578억 달러(약 67조원).
중국이 작년 처음 개최한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기간 체결됐다고 밝힌 계약액이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수입박람회 기간에도 중국은 이에 준하는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어 자국의 막강한 '차이나 머니'의 힘을 나라 안팎에 과시하려 하고 있었다.
5일 개막한 제2회 수입박람회가 진행 중인 상하이 훙차오 국가회의전람센터(NECC)를 찾아갔다.
150개국에서 모여든 3천700여개의 기업이 축구장 50개에 해당하는 총 36만㎡ 면적의 전시장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었다.
라이프 스타일 전시 구역을 가보니 한가운데에 프랑스 패션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와 이탈리아 패션기업 돌체앤가바나(D&G) 등 명품 업체들이 화려하게 꾸민 전시관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유럽 명품 업체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에 구애하는 것은 명품 시장의 판도가 이미 중국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펴낸 '2019년 중국 럭셔리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중국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 규모가 연간 200조원을 넘어 전체 세계 소비의 40%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넘어 전방위 갈등을 빚고 있지만 중국이 가진 돈의 힘은 미국 기업들도 수입박람회 현장으로 대거 불러들였다.
보잉, 퀄컴과 같은 미국이 주도하는 첨단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이미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작년보다 미중 관계가 한층 험악해졌지만 올해 수입박람회에 참여한 미국 기업은 작년의 174개보다 많은 192개로 늘어났다.
닫힌 중국 시장의 문을 열기 위한 일부 미국 기업들의 끈질긴 노력도 눈길을 끌었다.
페이스북은 과학기술 전시 구역에 대형 전시관을 또 꾸렸다. 페이스북은 2년 연속 수입박람회에 참여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전시장 입구 대형 화면에 띄운 지도에 세계 10억명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며 국가별 사용자 현황을 소개했다.'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으로 불리는 대외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중국이 대외 정보가 대량 유입될 수 있는 페이스북에 자국 시장 문을 열어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페이스북의 중국을 향한 '짝사랑'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입박람회는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 속에서 자국의 구매력을 앞세운 세력 과시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달 중국의 국경절에 진행된 인민해방군 열병식이 군사력이라는 '근육'을 자랑하는 행사였다면 날로 규모가 커지는 수입박람회는 '차이나 머니'의 힘을 앞세운 '경제 열병식'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수입박람회라는 대형 통상 이벤트를 주도적으로 활용해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 균열을 가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개막식 직후 수입박람회장의 프랑스 국가관을 방문해 프랑스산 와인을 담은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중국의 체제 선전장 성격이 강한 수입박람회 행사에서 서방 세계를 대표하는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시 주석의 다정한 건배 모습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 균열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이런 외교적 성과의 뒤에는 역시 중국의 막강한 구매력이 자리 잡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3월 프랑스를 국빈방문하면서 에어버스 300대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등 45조원 규모의 경협 체결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한편, 중국 정부 주도로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수입박람회가 실질적으로 외국 기업들의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되는지는 기업 간, 업종 간에 다소간의 온도 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작년 수입박람회 기간에 수십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구매가 체결됐다고 하지만 수입박람회 전후에 이뤄지는 통상적인 거래들을 수입박람회의 성과로 잡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하이의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앞서 미리 맺은 계약을 수입박람회 실적으로 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수입박람회 기간 체결된 금액 전체를 수입 순증액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가 중요시하는 행사에 '성의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적극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을 포함한 일부 글로벌 기업 중에는 작년 첫 행사 때 전시관을 열고 참여했다가 별다른 마케팅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는 조용히 빠진 사례도 적지 않다.
반면, 소비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중견 기업들의 경우에는 수입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중국 바이어를 만나 큰 매출 신장 효과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사카에서 온 한 일본 건강식품 회사 관계자는 "작년 수입박람회 참가 이후 처음에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중국 측에서 연락이 와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주스 제조기 등을 만드는 한국 업체 엔유씨전자도 수입박람회 효과를 크게 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작년 첫 박람회에 참여해 중국 측 바이어와 소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대형 전자제품 유통업체 쑤닝은 2회 수입박람회를 계기로 이 회사 제품 1천400만 달러 구매 의향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중국이 최대 교역국인 한국 기업들에는 대체로 중국의 수입박람회가 큰 수출 확대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 수입박람회에 참여한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와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을 포함해 260여개에 달한다. 이는 300여곳의 기업이 참여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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