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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기억](16) 인권위한 '인간매매' 27년…극우 부상에 기억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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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기억](16) 인권위한 '인간매매' 27년…극우 부상에 기억소환
프라이카우프, 58% 시청률 토론서 논의…공론화후 정치권 생산적 갈등속 추진
보수정권이 도입해 진보정권이 발전…동독 내 인권탄압 억제 역할
프라이카우프·반체제 운동 기억으로 동독지역 시민 자긍심 찾기




[※ 편집자 주 = '비핵화'와 '평화'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의 외교적 흐름 속에서 '통일'은 이제 현실적 주제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많은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구촌으로 눈을 돌려 한반도 통일의 '유일한 참고사례'에 관심을 기울여볼 때입니다. 한반도에서 8천500여 ㎞ 떨어진 동서독 통일과 이후 통합 과정은 더 이상 '먼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통일에 다리를 놓은 동서독 교류ㆍ협력이 이뤄지게 된 과정을 들여다보면 당시 서독 현실과 한국 간에 유사점을 상당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남갈등' 못지않게 '서서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됐습니다. 서독에서도 경제적 지원과 인권 문제가 갈등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인 올해, 연합뉴스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서서갈등'의 전개와 극복, 이 과정에서 민심의 흐름, 동서독 교류·협력의 일상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내부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 동독과의 공존에 성공했던 '서독의 기억'을 꺼내봅니다. 이제 겨우 서로에게 겨눈 총부리를 거두려는 한반도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연합뉴스는 올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새로운 자료 조사와 관점으로 취재, 8개의 관련 주제로 독자 여러분께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이 여섯번 째 시리즈로, 동서독 간 대표적인 인권 이슈였던 '프라이카우프'를 둘러싼 '서서갈등'을 다룹니다. 기획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정치+문화연구소'의 이진 훔볼트대 정치문화학 박사가 협력했습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한국에서는 옛 서독이 대가를 지급하고 동독 반체제 인사들을 데려온 '프라이카우프'(Freikauf)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있다.
서독 정치권에서 별다른 논쟁이 없었던 데다, 정권이 여러 차례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우여곡절 없이 이어져 온 정책이라고 한국 사회에 전해져왔다.
서독 언론 역시 정부의 보도유예 요청을 받아들여 암묵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국내에서 반복 재생돼 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연합뉴스가 '서독의 기억' 취재 과정에서 조사한 결과, 프라이카우프의 진행 과정에서 여야 간에 갈등의 골이 있었고, 공론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1972년에는 시청률이 58%에 달하는 TV 총선 토론에서 도마 위에 오른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언론에서도 프라이카우프 초창기부터 보도가 꾸준히 이뤄졌다.
서독 시민이 프라이카우프의 존재와 방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동서독 간 인권 문제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프라이카우프도 '서서갈등'의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은 무조건으로 상대방 발목잡기식이 아니었다.
프라이카우프가 동독의 인권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공통적인 인식 아래, 대화가 가능한 수준에서 비판과 생산적인 갈등 조정이 이뤄졌다.
언론이 공론화하고 정치권이 실행 방식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보수와 진보 간의 잇따른 정권교체 속에서도 정착된 것이다.
국내에서 북한의 정치범 등 인권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프라이카우프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인권 문제와 관련해 옛 동서독 분단기와 한반도의 여건이 상당히 다른 만큼, 프라이카우프와 같은 아이디어가 실효성을 갖기는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프라이카우프는 현실적인 도입 여부를 떠나 현실적 조건이 다른 독일의 사례로 치부하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레퍼런스다.
대가 제공 문제 등을 놓고 서독 내부, 그리고 동서독 간 벌어진 갈등의 전개 양상과 조정이 이뤄진 과정 자체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다.


◇ 꾸준한 언론 보도…인권단체서도 문제제기
'동독 수감자에 대한 프라이카우프 연구'(Der Haeftlingsfreikauf aus der DDR) 등 관련 자료에 따르면 프라이카우프는 1963년 8명의 동독 반체제 인사가 석방되면서 시작됐다.
서독에서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당시 서독은 독일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헌법에 따라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채 동독 시민들을 자국 시민으로 간주했다. 인권탄압을 받는 동독의 반체제 인사를 데려오는 근거가 된 것이다.
동독 반체제 인사 1명을 서독으로 데려오는 대가로 4만 마르크 정도가 동독으로 흘러갔다.
정치범의 혐의와 징역 기간에 따라 액수가 달라졌다. 최소는 1만 마르크였고, 최대는 8만 마르크에 달했다.
27년간 3만1천755명의 정치범과 그들의 자녀 2천명 정도가 프라이카우프를 통해 서독으로 넘어왔다.
프라이카우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4년 8월이었다. 서독의 여러 신문 및 방송뿐만 아니라 서유럽의 매체들은 동독의 정치범들이 9월 말 서독의 기센에 도착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서독과 동독 당국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언론은 어떻게 동독 정치범들이 오게 됐는지 후속 보도를 했지만, 서독 당국이 입을 다문 탓에 경제적 대가 부분에 관해서는 확인 보도가 나오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독 정부 내부에서 동독에 경제적 대가를 치렀다는 정보가 언론에 흘러들어오면서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언론에는 구체적인 금액까지 거론됐다.
이에 불만을 품은 동독 당국은 곧바로 프라이카우프를 중단했다.
서독 정부는 그제야 언론을 상대로 동독에 대가를 치렀다고 인정했다.
서독 당국은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같은 해 11월 서독 교회를 중간에 내세워 프라이카우프를 재개하기로 동독 정부와 합의했다.
교회가 동독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데려오는 대신, 인도적 차원을 명분으로 동독에 물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우회했다.
물론 이에 필요한 예산은 서독 정부가 부담했다.
종교를 창구로 삼아 프라이카우프를 진행해 당국 간에 '인간매매'가 이뤄진다는 인권단체 등의 비판을 피하려 한 것이다.
이후에도 프라이카우프에 대한 보도는 거의 매년 이뤄졌다. 인권단체들은 인권 문제인 프라이카우프를 투명하지 않게 비공개로 계속하는 것은 동독의 인권문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공개화를 요구했다.
동독 당국 입장에서 프라이카우프의 대가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비밀경찰인 슈타지 등은 프라이카우프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반체제 인사들을 추방해 사회안정을 이루고 추방 인사들에 대한 교육 투자 비용 등을 회수해야 한다는 명분이 앞섰다.
동독 정권 내에서 서독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온건파의 목소리가 강화된 것은 프라이카우프의 부수적인 성과였다.


◇ 정권교체 후 더 탄력…여권의 '치적' 홍보에 야당 반발
보수정권이 도입한 프라이카우프는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이 자유민주당을 소수 파트너 삼아 연립정부를 이룬 이후에도 중단되기는커녕 더 활성화됐다.
1970년 초 사민당 소속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추진한 신동방정책으로 동서독 관계가 진전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인원과 대가액이 늘어났다. 동독 당국이 돈벌이를 위해 수감자를 일부러 늘린다는 지적까지 서독 내에서 나올 정도였다.
서독으로 이주를 원하지 않는 정치범은 동독에서 풀려나게 됐다.
특히 1972년 11월 초 서독 당국이 동독으로부터 700여 명의 수감된 동독 주민을 데려올 것이라면서, 이는 정부의 노력이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발표한 점이 정치권에 논쟁의 불을 붙였다.
1960년대 체제 경쟁 분위기 속에서도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프라이카우프를 도입한 기민·기사 연합은 야당이던 1972년 총선 과정에서 여당인 사민당 정부 측에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사민당 정부 측이 프라이카우프를 조용히 처리하지 않고, 마치 신동방정책의 결실인 것처럼 정치적으로 도구화했다는 비판이었다.
서독 내에서는 동독에 지급되는 자금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972년 총선을 나흘 앞둔 11월 15일 방송된 여야 최고후보자 간 TV토론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토론회를 방영한 공영방송 ARD와 ZDF 시청률은 서독에서만 58%에 달했고, 서독 TV의 전파가 닿는 동독 시민들도 상당수 시청했다.
총선에선 사민당이 45.8%의 높은 득표율로 승리했다.
이후 프라이카우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더욱 커졌고, 일간 빌트와 벨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주요 매체에서는 거의 매년 프라이카우프의 규모와 예상 대가액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결국, 공공연한 비밀이 된 프라이카우프는 사회적 논란을 거치면서 서독 시민이 명과 암을 판단해 받아들임에 따라,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추진될 수 있었던 셈이다.
갈등이 조정될 수 있었던 데에는 프라이카우프가 동독 시민에게도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탓에 장점도 있었다.
서독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큰 동독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인권탄압의 정도가 줄어들었다.
서독의 진보진영이 주도해 1961년 개설한 잘츠기터기록소(Die Zentrale Erfassungsstelle Salzgitter) 등을 통해 동독 측의 인권탄압 사례를 기록해 가고 있었고, 서독으로 넘어온 반체제인사들은 이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동독 당국자들이 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분단기 서독으로 추방됐던 동독반체제 인사였던 롤란트 얀 슈타지문서기록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프라이카우프의 존재는 동독에서 수감 중인 반체제 인사들이 하루하루 버티는 희망이었다"면서 "동독 당국자들도 미래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수감자들의 처우가 개선되는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 동독 반체제운동 기록에서 자긍심 찾기…獨시민 공동의 기억 형성 시도
통일 이후 프라이카우프는 독일에서 점점 잊혀갔다.
그러다 최근 기억 속에 파묻힌 프라이카우프를 포함해 동독의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기록을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옛 동독지역에서 극우세력이 부상하면서부터다.
극우세력이 옛 서독지역보다 급성장하는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사장된 동독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옛 동독지역에서 극우세력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이유로는 이 지역 주민들이 상당수가 '2등 시민'이라는 자괴감을 갖는 점이 꼽힌다.
그런데 자괴감을 갖는 이유가 옛 서독지역과의 경제적 격차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경제적 격차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세력이 더 커지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지역 가운데 경제적으로 앞선 지역 일부에서 극우세력이 더 활개를 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 들어 사회적 원인에 초점을 맞춘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동독 시민이 독재 체제에서 신음하다 통일의 수혜자가 됐다고 일방적으로 묘사되어온 데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동독 사회에서 반체제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 기억이 통일 이후 사장됐다는 지적이다.
동독 시민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서독 정부와 시민의 노력에 대한 기억도 많이 잊힌 것도 사실이다.
프라이카우프와 반체제 운동은 묻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대규모 평화 시위로 동독 민주화 혁명의 시발점이 된 라이프치히에서는 지난달 2일 반체제 운동을 주제로 열린 학술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역사에서 실패한 사회주의의 기록으로 치부된 '동독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동독지역 시민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찾도록 하려는 작업의 하나인 셈이다.
반체제운동 학술토론회에 참가한 이진 박사는 "동독의 억압적 정권에 저항해 끝내 평화 혁명과 민주화를 이루어 낸 동독 시민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다"면서 "서독의 진보, 보수 모두가 기존의 진영 논리를 넘어, 동독 내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도 마찬가지로, 분단을 넘어 빚어낸 공동의 기억은 통일에 뒤따르는 갈등을 함께 담아낼 그릇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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