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만에 끝난 터키의 쿠르드 공격…중동정세는 지각변동
'나토 회원국' 터키, 러시아와 합동 순찰
시리아군 YPG 철수 작업에 참여…두 번 배신당한 쿠르드
미국 떠난 자리 꿰찬 러시아…중동 영향력 확대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공격이 13일 만에 일단락됐다. 2주가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중동 정세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에서 6시간 30분간 회담하고 10개 항으로 된 양해각서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이 투입돼 150시간 안에 쿠르드 민병대(YPG)를 터키-시리아 국경에서 30㎞ 밖으로 철수시키고, 이 작업이 완료된 후 러시아·터키군이 이 지역을 합동 순찰한다는 것이다.
시리아의 앞날은 물론 향후 중동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이 양해각서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이 있다.
첫째는 터키군과 러시아군이 시리아 국경지대를 합동 순찰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국제 군사작전과는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터키는 냉전 시기 구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0)의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비록 냉전은 끝났지만, 미국과 유럽의 서방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를 실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나토 회원국 중에서도 최전선에서 공산권의 남하를 막아온 터키가 러시아와 합동 순찰에 합의한 것은 서방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터키와 러시아가 합동 순찰 임무를 수행하는 지역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지난 8월 7일 미국과 터키가 '시리아 안전지대' 설치에 합의하고 그 예정지를 공동순찰하던 곳이다.
터키는 애초 유프라테스강 동쪽 시리아 국경을 따라 길이 444㎞, 폭 30㎞에 달하는 안전지대를 설치, 자국 내 테러조직(쿠르드노동자당·PKK)의 시리아 분파인 YPG를 몰아내고 시리아 난민 100만 명 이상을 안전지대에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미국은 이에 난색을 보였다.
러시아와의 합동 순찰로 터키는 미국 대신 러시아를 시리아 안전지대 건설의 파트너로 택한 모양새가 됐다.
이는 최근 들어 미국을 멀리해온 터키가 친(親)러시아 행보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미국의 빈자리를 꿰찬 러시아의 중동 영향력 확대를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터키가 미국을 멀리하고 친러 행보를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6년 7월 군부 쿠데타 시도였다.
쿠데타 시도 전만 해도 터키와 러시아 관계는 2015년 11월 발생한 터키 공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역대 최악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쿠데타가 발생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시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조종사 2명을 쿠데타 연루 혐의로 체포했으며, 자신의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이 배후에서 격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 터키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터키 정부는 미국에 펫훌라흐 귈렌을 터키로 송환하라고 요구했으나, 미국은 귈렌이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며 터키의 요구를 거부했다.
여기서부터 터키와 미국의 관계는 꼬이기 시작했다. 터키는 미국이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을 판매하지 않자 러시아제 S-400 방공 미사일을 도입했고, 미국은 터키가 구매하기로 한 최신예 F-35 전투기의 판매를 금지했다.
또 터키가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과 터키 내 미국 공관 소속 터키인 직원을 구속하자 미국은 경제 제재를 가했고, 터키 리라화는 급락했다.
쿠데타 시도 이후 미국에 쌓인 앙금이 터키를 친러로 기울게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빠진 자리를 재빨리 차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며 시리아 북부 주둔 미군의 철수를 결정하자 러시아는 미군 기지가 있던 시리아 북부 만비즈 인근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터키와 시리아 정부·쿠르드 연합군이 만비즈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사이 러시아군은 양측의 경계선을 따라 순찰 활동을 벌였다.
만비즈 주둔 미군이 해오던 충돌방지 역할을 수행하며 영향력을 과시한 것이다.
러시아군 관계자는 지난 16일 만비즈 순찰 활동을 언급하며 "러시아 국기만 보면 전투가 자동으로 중단된다. 터키도 쿠르드도 우리에게 해를 끼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을 일단락 지은 사람도 결국 푸틴 대통령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군사작전 중단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편지를 휴지통에 버린 채 시리아 북동부 진격으로 얻은 과실을 수확하러 러시아로 날아갔다.
그는 푸틴 대통령에게 시리아 군사작전의 목적과 안전지대 설치 계획을 몸소 설명한 끝에 푸틴의 동의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영국 공영 BBC는 푸틴 대통령이 중동의 외톨이에서 중재자로 힘을 키웠다고 평가했으며, 일간 더 타임스는 그가 중동의 최대 중재자로 부상했다고 인정했다.
양해각서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시리아 정부군의 국경수비대가 러시아군과 함께 YPG 철수 작업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터키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쿠르드족은 지난 13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알아사드 정권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2012년 여름 수도 다마스쿠스 방어를 위해 북동부를 비웠고, 그 사이 쿠르드족은 사실상 자치를 누려왔다.
지난 7년간 북동부의 통제력을 상실한 알아사드 정권은 쿠르드족이 지원을 요청하자 재빨리 반응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터키 국경에서 30㎞ 떨어진 만비즈에 진입한 데 이어 터키 국경과 맞닿은 코바니에도 병력을 배치했다.
정부군은 총 한번 쏘지 않고 북동부를 되찾았으며, 이번 합의로 YPG를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시키는 작업에도 참여하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과의 회담 이후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전화해 회담 결과를 통보하고 YPG 철수 작업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시리아 정부의 최대 지원 세력이 러시아라는 점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이 푸틴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터키의 공격에서 보호해주겠다던 정부군이 오히려 YPG를 내모는 모양새가 됐다.
'세계 최대의 나라없는 민족' 쿠르드는 미국에 이어 알아사드 정권에게도 배신당하며 다시 한번 나라 없는 서러움을 겪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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