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쿡 선장 상륙 250주년…뉴질랜드, '기념행사'서 분열
"자랑스러운 역사" vs "트라우마 남긴 원주민 학살자"…총리도 행사 불참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정확히 250년 전인 1769년 10월 8일(현지시간), 영국 제임스 쿡 선장의 탐험대가 지금의 뉴질랜드 북섬 기즈번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벌어진 일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에게는 '지옥' 이었다.
쿡 선장 일행은 원주민들을 학살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영토를 영국 왕실의 이름으로 점령하며 식민 통치의 시작을 알렸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쿡 선장의 '뉴질랜드 도착' 250주년을 맞아 뉴질랜드 정부가 이날 기념행사를 열자 시민들 사이에 분열이 일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 등이 보도했다.
이날 오전 기즈번에서는 쿡 선장이 이끌었던 영국 군함 'HMS 인데버호'의 입항을 재연한 축제가 열렸다.
뉴질랜드 문화유산부가 쿡 선장 항해 250주년을 맞아 그의 항해를 재연한 '투이아 250'(Tuia 250) 프로젝트의 일환인 이번 행사에는 1만여명의 축하 인파가 몰렸다.
기즈번 주민인 발 맥그리비는 BBC에 "우리는 제임스 쿡 선장과 그의 업적을 기념하려 여기 모였다"며 "그는 우리가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 역사를 대표한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행사장 한쪽에서는 마오리족을 중심으로 쿡 선장의 뉴질랜드 도착을 축하해서는 안 된다는 항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에 참여한 머리스 렌트는 "마오리 원주민으로서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다시 느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충격적"이라면서 "우리 원주민의 인권은 침해되고 또 침해됐다"고 질타했다.
한 여성은 현지 언론 뉴질랜드 헤럴드에 "그(쿡 선장)는 우리 선조들을 일부 살해했다"며 "이 땅은 원래 '발견'돼 있었는데, 이 자를 치켜올리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날 행사장을 찾은 '투이아 250' 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 제니 시플리는 "(원주민들이) 당연히 시위를 통해 견해를 표현할 수 있긴 하지만, 원주민 중에서도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의회 의원들도 여럿 자리했으나 저신다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를 방문한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담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주말 사이 미리 기즈번을 찾았던 아던 총리는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정치적 행보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행사가 "뉴질랜드 역사의 현실을 자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라면서 "반대 시위가 열릴 수 있지만, 그 또한 대화의 일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쿡 선장의 원주민 학살로 빚어진 뿌리 깊은 갈등은 25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뉴질랜드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다.
특히 기즈번은 쿡 선장의 동상이 수차례 낙서·파괴된 끝에 결국 철거되는 등 역사적 갈등이 이어진 곳이다.
지난 2일에는 뉴질랜드 주재 영국대사관이 마오리족 지도부를 비공개로 만나 쿡 선장의 학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나, 이는 희생자 후손 등이 꾸준히 요구해온 '영국 왕실'의 사과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달에는 '투이아 250'의 일환으로 인데버호를 재현한 배가 뉴질랜드 북섬 망고누이에 입항하려다 마오리족의 거센 반발로 계획이 전면 취소되기도 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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