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시장 '흥청망청' 고발"…이스탄불, 노는 차량 수백대 전시
여당 25년 아성 깬 신임시장 "시 예산 낭비 증거"…민심 분노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이스탄불의 예니카피 광장은 15년 넘게 터키를 지배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 결집차 방문하는 단골 유세 장소 중 한 곳이다.
이 광장에 호화 브랜드를 포함한 수 백대의 시 소속 유휴 차량이 진열돼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 이스탄불 광역시장 선거, 부정 논란에 따른 6월 재선거까지 승리로 이끌며 집권당의 25년 아성을 무너뜨린 신임 이스탄불 시장이 전임자의 흥청망청 행정을 고발할 목적으로 기획됐다.
광장에 주차된 차량 수백 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 소속의 전임 시장이 시정에 필요하다며 빌렸으나, 사용되지 않은 채 자리만을 차지하고 있던 것들을 옮겨놓은 것이다.
에크렘 이마모을루(49) 이스탄불 시장은 "광장에 줄지어 선 이 불필요한 차량들은 (전임 시 지도부가) 시의 재산을 얼마나 낭비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앞서 지난 5일 한 공공포럼에 참석해서는 "우리는 이 차량들을 반환하려 한다"며 "누구를 위해 공공재원을 쓴 것인가. 이런 낡은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선거 유세 당시에도 지난 25년간 이스탄불을 이끌어 온 AKP 소속 전임 시장들의 공공재원 낭비와 부패를 비판하면서, 당선 시 전임 시장들의 방탕한 시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는 지난 6월 시장 재선거 전에 올린 트윗에서는 "전임 시장 당시 이스탄불은 불필요한 차량에 1억2천만 리라(251억 원)를 쏟아부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이들 차량 중 상당수가 AKP 당원들의 사적인 사용을 위해 임차된 것임을 시사했다.
경제난 속에 치솟는 물가와 실업률에 신음하고 있는 이스탄불 시민들은 광장을 채운 차량들에 저마다 분노와 허탈함을 표현했다.
은퇴한 68세의 남성은 "나는 월 2천 리라(약 42만원)의 연금으로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 돈을 이렇게 허비한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업 상태의 34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데, 이스탄불시가 이렇게 많은 차를 사용하는 것은 황제가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집권 AKP 소속 한 고위관리는 현지 일간 사바흐에 "대여한 모든 차량이 필요에 의해 실제로 사용되는 차량"이라며 이마모을루 시장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의 이마모을루 시장은 AKP 정권의 '2인자'인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를 이스탄불 광역 시장 선거에서 두 번이나 꺾으며 단숨에 에르도안 대통령 '대항마'로 떠오른 인물이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지난 3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근소한 차로 승리했으나 집권 AKP 측이 선거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됐다며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지난 6월 실시된 재선거에서도 다시 승리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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