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서 되살아나는 마약전쟁의 악몽…더 광범위하고 잔혹해져
주점 방화공격 사망자 29명으로 늘어…마약조직 잔혹 범죄 기승
"범죄 지역 광범위해지고 어린이도 서슴지 않고 살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29명의 목숨을 잔혹하게 앗아간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코아트사코알코스의 주점 방화 공격은 많은 멕시코인에게 '마약과의 전쟁'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마약 카르텔들의 범죄는 전보다 더 잔혹해졌고, 멕시코 전역으로 전선이 확대됐다.
30일(현지시간) 멕시코 언론에 따르면 지난 27일 밤 코아트사코알코스의 유흥주점 '카바요 블랑코'에서 발생한 방화 공격의 용의자는 사흘이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당시 4명 이상의 무장 괴한이 주점을 들이닥쳐 총을 쏘며 사람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했고 출입문을 봉쇄한 채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 이날까지 남자 17명과 여자 12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 필리핀 국적자 2명도 있었다.
공격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마약 카르텔이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엔 대형 카르텔인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과 '로스 세타스'가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멕시코 언론 아니말폴리티코에 따르면 카르텔과 주점이 마약 판매와 관련해 분쟁이 있었거나, 이 주점이 경쟁조직의 마약 판매처였을 가능성, 혹은 주점이 마약 판매 요구나 갈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보복했을 가능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됐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2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취임한 후 발생한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달 초에도 미초아칸주에서 여러 구의 시신이 다리에 내걸린 채 발견되는 등 마약 카르텔의 잔혹한 범죄는 계속 이어졌다.
멕시코인들은 피비린내 나는 범죄가 횡행하던 마약과의 전쟁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멕시코 마약과의 전쟁은 2006년 말 시작됐다. 펠리페 칼데론 당시 대통령이 취임 직후 마약 조직 소탕을 위해 미초아칸주에 군과 연방 경찰을 투입하며 전쟁 개시를 알렸다.
후임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전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계승하긴 했지만 가장 치열했던 것은 칼데론 전 대통령의 재임 중인 2006∼2012년이었다.
전쟁의 주체는 정부와 마약 카르텔이었으나, 조직들 간의 전쟁이 더욱 횡행했다. 정부가 마약 조직을 와해하면 무주공산이 된 마약 수송통로 등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조직들이 다툼을 벌인 탓이다.
벌집을 쑤신 것처럼 범죄가 들끓으면서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숨진 이들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과거 정권의 명백한 실책으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마약 조직 소탕에 나서는 대신 청년들의 조직 가담을 막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주는 등의 장기 대책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마약 조직의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마약과의 전쟁 당시 살인 건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2011년으로 2만7천 명가량이었는데, 지난해에 3만5천 명 가까이 치솟으며 최고치를 경신했고 올해 이를 다시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방화 공격과 시신 전시 등이 과거 마약전쟁 당시 수법과 유사하다며 "멕시코 마약 전쟁이 되돌아온 듯하다. 이번엔 2006∼2012년 때보다 더 악화했다"고 표현했다.
과거엔 살인 등의 범죄가 시우다드후아레스, 티후아나, 쿨리아칸 등 일부 지역에 집중됐다면 최근엔 멕시코 전역으로 확대된 데다 어린이도 서슴지 않고 살해하는 등 수법은 더 잔인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며칠 전 시우다드후아레스는 괴한이 쏜 총에 4세, 13세, 14세 소녀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 과거엔 마약 갱들도 어린이만큼은 살려두는 것이 불문율이었다고 AP는 설명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번 코아트사코알코스 사건을 비롯한 최근 범죄들을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비난하며 장기적인 해법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복잡하다.
전날 일간 엘우니베르살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지도는 69%로 여전히 높았으나 '범죄 대처'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8.1%로 지지한다는 응답 37.6%보다 더 높았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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