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에서 주역으로…이탈리아 콘테 총리의 '변신'
NYT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탈바꿈" 평가
오성운동·민주당 양측 지지 속 정치적 무게감 불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정치 경험이 전무한 무명의 법학 교수 출신으로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얼굴마담'으로 치부되던 주세페 콘테(55) 총리가 연정 붕괴와 새 연정 구성 과정에서 정치적 무게감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4개월 동안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의 대표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에게 끌려다니며 무시와 모욕을 겪었던 콘테 총리가 '아무래도 상관없는'(irrelevant) 인물에서 '대체 불가능한'(irreplaceable) 인물로 변신했다고 29일(현지시간) 평가했다.
이날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콘테 총리를 면담해 차기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콘테 총리가 이끄는 오성운동-민주당 연정 구성 계획을 사실상 승인한 것이다.
무소속이지만 정치 성향상 오성운동과 결을 같이 하는 콘테 총리는 살비니 부총리가 오성운동-동맹 연정의 해체를 선언하자 지난 20일 사임을 발표했으나, 마타렐라 대통령의 요청으로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해 왔다.
콘테 총리는 내주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차기 내각 구성안을 제출하고 하원과 상원에서 새 연정에 대한 신임을 묻는 표결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한번 내각을 이끌 기회를 얻은 그는 마타렐라 대통령 면담 후 이탈리아가 유럽연합(EU)의 주역으로 다시 떠오르도록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10여일 전까지만 해도 존재감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던 콘테 총리가 급부상하자 현지 일간 라 스탐파는 콘테 총리가 "'예스맨'에서 '정치의 신'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그의 변신을 조명했다.
실제, 무명의 법학 교수에 불과했던 콘테 총리는 작년 5월 총리로 지명된 뒤에도 살비니 부총리, 연정의 또 다른 실세인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겸 부총리의 그늘에 가려 좀처럼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해왔다.
콘테 총리는 취임 직후 의회에서 디 마이오 부총리에게 발언 허락을 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NYT는 총리직을 얼마나 수행할지 확신하지 못하던 콘테 총리가 작년에 로마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데 필요한 영어 능력 시험을 치려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하지만, 14개월이 지난 현재 빛을 잃은 것은 오히려 디 마이오 대표와 살비니 부총리가 됐다.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던 디 마이오 대표는 강경한 난민 정책을 주도하며 인기몰이를 하는 살비니 부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정치 성향이 비슷한 콘테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을 택했다.
지지기반과 정치철학이 상이하게 다른 극우 정당 동맹과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간의 갈등을 균형감 있게 조율해 온 행보도 독자적 지지율 확보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연정을 깨뜨린 동맹을 대신해 오성운동과 새 연정을 구성하기로 한 중도 좌파 성향 정당 민주당은 당초 콘테 총리를 포함한 전 정권 인사를 전원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가 콘테 총리의 유임에 합의했다.
민주당은 지난주에는 디 마이오 대표가 아닌 무소속인 콘테 총리를 오성운동의 지도자이자 교섭 상대역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혀 디 마이오 대표를 격분케 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도 콘테 총리에 대한 오성운동의 지지는 여전히 굳건해 보인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오성운동의 창립자인 베페 그릴로는 지난 27일 블로그를 통해 콘테 총리를 '신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칭하며 지지를 표명했다.
한편, 설마 했던 민주당과 오성운동의 연정이 가시화됨에 따라,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깨뜨린 살비니 부총리는 야당으로 전락해 내각에서 쫓겨날 상황에 놓였다.
현지 정가에선 그가 연정 붕괴 후 조기 총선을 통해 동맹을 최대 정당으로 만들고 총리직에 오르려다 제 발등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콘테 총리가 지난 20일 의회에서 한 사임 연설에서 연정 붕괴를 촉발한 살비니 부총리를 맹렬히 비난한 것도 콘테 총리의 대중적 인기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평소 절제되고, 조용한 스타일인 그는 이날 1시간여에 걸친 연설에서 개인과 당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불안정의 위기 속에 몰아넣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치인이라고 살비니를 몰아세워 이탈리아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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