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땅값 '이중잣대'…재건축은 공시지가, 일반사업은 매입가
일반택지는 '예외적' 매입가 인정…재건축은 '사실상 공시지가'로 불리
재건축, 재초환 부담금 감소액보다 분양가 손실 더 커 부담금 비상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가 이르면 10월부터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한 가운데 재건축 사업 추진에 먹구름이 끼었다.
정부가 상한제의 땅값을 강력하게 규제할 예정이어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까지 적용받는 단지들은 사실상 사업성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반 택지 매입을 통한 자체사업 등은 땅값 산정시 예외적으로 실매입가격이 인정될 예정이어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 재건축·재개발 상한제 땅값 원가연동제…'공시지가'서 크게 못 벗어날 듯
민간택지내 분양가 상한제 땅값은 애초 표준지 공시지가를 근거로 산정해야 한다.
국토부는 이번에 관련 규칙을 개정하면서 공시지가로 표기했던 것을 '표준지 공시지가'로 명확히 하고, 감정평가기관 2곳 가운데 시·도지시가 추천한 1곳을 포함시켜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택지의 감정평가를 하도록 했다.
이 때 현실화하지 않은 미래의 개발이익은 반영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택지 조성에 투여된 원가만 인정하겠다는 '원가연동제'다.
그러면서 이 평가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보기 위해 한국감정원에 검증 기능을 맡기고, 관계 법령에 위반해 평가됐거나 합리적 근거 없이 표준지 공시지가와 가격 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진 경우 재평가를 요구하기로 했다.
감정평가기관이 조합 등의 민원을 받아 임의대로 평가금액을 올리지 못하게 감시하겠다는 취지다.
국토부가 이번에 상한제 땅값 책정에 특별히 날을 세우는 것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지금의 분양가 상한제 모델이 시행됐지만 곧바로 정권이 바뀌면서 상한제의 칼날은 무뎌졌다.
당시 감정평가사의 재량에 따라 시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땅값이 후하게 책정되면서 분양가 인하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강화된 상한제 땅값 산정 방식은 사실상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전체 분양가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50∼70%에 달하다 보니 땅값을 공시지가 수준에 묶어 버리면 분양가도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토부는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의 시세 대비 현실화율이 평균 64.8%라고 발표했지만 서울의 현실화율은 이보다 낮은 50∼60% 수준으로 예상된다. 최근 경실련이 추정한 서울지역 25개 아파트의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평균 33.8%에 그쳤다.
땅값이 높고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떨어지는 강남 일부 재건축 단지는 상한제 분양가가 주변 시세는 물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기준보다도 상당히 낮아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강남·서초구 일부 단지에서는 분양가가 시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값 이하' 아파트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연합뉴스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서초구 반포동 반포 주공 1·2·4주구(주택지구)와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의 일반 분양가를 공시지가 기준으로 추산한 결과 주변 시세보다 크게 낮아졌다.
반포 주공 1·2·4주구는 현재 깔고 있는 땅이 표준지로, 공시지가 금액이 3.3㎡당 5천만원 수준이다.
공시지가에서 용적률 270%를 감안한 땅값은 3.3㎡당 1천800만원, 여기에 기본형 건축비(3.3㎡당 644만5천원)와 각종 가산비를 후하게 반영해 3.3㎡당 1천만원이 들었다고 가정해도 분양가는 3.3㎡당 2천800만원 수준이다. 공시지가만 고려한 '최저 분양가'가 이 정도다.
현재 반포 주공1단지 주변 아파트 시세(3.3㎡당 6천만∼9천만원)는 물론, 올해 5월 HUG의 분양가 심사를 받아 분양한 서초 방배그랑자이의 3.3㎡당 4천687만원에 비해서도 훨씬 낮다.
다만 감정평가사들이 인근의 다른 평가 사례 등을 반영해 시세보다 낮은 공시지가를 현실화하는 보정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 땅값은 이보다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 감정평가사는 "공시가격에 일정 부분 시장가치를 반영하면 반포 주공1·2·4주구의 상한제 분양가는 3.3㎡당 3천만원대 중반∼4천만원 선에 책정될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정평가사들은 현재 정부 기조와 한국감정원 검증 절차 등을 고려할 때 시장가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자체 분양가심의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감정평가사는 "정부가 미래의 개발이익을 땅값에 반영하지 말라는 것은 조합이 거둘 분양수입 등 미래가치는 고려하지 말고 철거비 등 순수 투입비용만 고려해 사실상 공시지가 수준에서 땅값을 산정하라는 주문과 같다"고 말했다.
같은 기준으로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인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의 상한제 분양가는 3.3㎡당 2천200만∼2천300만원 이내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분양을 앞둔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둔촌 주공은 이미 이주를 마친 상황이어서 상한제 금액에 맞춰 설계와 마감을 조정하는 선에서 분양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반포 주공1단지 분양가가 3.3㎡당 3천만∼4천만원에 이하에서 결정된다면 사업을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일반 택지는 예외적 실매입가 인정…재건축과 분양가 격차 커질 듯
국토부는 그러나 재개발·재건축 부지가 아닌 일반 택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감정평가를 하되, 예외적으로 실매입가도 인정할 방침이다. 실제 일반적인 토지 거래를 하면서 공시지가로 땅을 사고 파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매입금액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증빙해야 한다. 국가에 납부한 취득세·보유세 영수증과 같은 제세공과금 서류 등이다.
용산 유엔사 부지나 MBC방송국 부지 등 비교적 거래 금액이 명확히 입증되는 땅은 재건축 사업보다 차라리 재건축·재개발보다 사정이 낫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한 부동산 개발회사 임원은 "일반적인 택지는 미래가치가 반영돼 매입금액이 시세보다 높은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극단적으로 재건축 단지의 땅값이 공시지가 수준에서 결정되고, 인근에 있는 일반 거래토지는 매입가를 인정받는다면 같은 동네에서도 분양가 차이가 상당히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이중잣대'가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재건축도 엄연히 조합의 사업인데 재건축 땅값에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실제 매입금액 인정 범위도 감정평가금액의 120%를 못 넘도록 제한할 것으로 보여 사업주체의 순수 매입비용이 모두 인정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건설사나 개발회사 등이 토지 매입을 위해 투입한 비공식적인 비용도 일절 인정받지 못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택지 매입에는 땅값 외에도 금융비용, 인건비, 민원 해결비 등 많은 비용이 든다"며 "투입 원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앞으로 자체 사업도 추진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 재초환 대상, 분양가 상한제로 추가부담 더 늘어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게 적용되는 재건축 조합원은 추가부담금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재건축 사업은 분양가 상한제로 일반 분양가격이 떨어지면 조합의 수입이 감소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이하 재초환) 부담금도 일부 줄어든다.
그러나 상한제로 인한 일반분양 수입 감소가 재초환 부담금 감소보다 커 결과적으로 조합원 추가부담금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을 통한 조합원 1인당 평균 개발이익이 3천만원을 넘으면 초과금액의 10∼50%를 부담금으로 부과한다.
이때 개발이익은 재건축 종료시점(준공인가) 집값에서 개시시점(추진위원회 설립 승인) 집값과 정상주택가격 상승분, 개발비용을 뺀 금액으로 산출하는데 종료시점의 집값을 조합원분은 준공시점의 공시가격, 일반분양분은 일반분양가가 기준이 된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분양수입이 1천억원이 줄었다면 재초환 부담금은 최대치로 가정해도 500억원만 줄어들기 때문에 분양수입 감소로 인한 추가부담금 증가가 더 큰 것이다.
현재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는 반포 주공1·2·4주구의 경우 2017년 말 가까스로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면서 재초환 부담금 부과를 피해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최근 법원이 1심에서 재건축 관리처분계획 전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재초환 위기까지 겹쳤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상한제로 분양가와 재건축 가격 인하 효과는 있겠지만 그만큼 재건축 사업을 중단하는 곳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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