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이빨 호랑이' 사라지고 코요테가 살아남은 이유는
먹이경쟁 결과 아닌 썩은 고기도 먹는 먹이유연성 차이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칼처럼 생긴 긴 송곳니를 가져 검치호(劍齒虎)로도 불리는 '스밀로돈(smilodon)'은 1만년 전까지만 해도 북미지역 초식 동물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화석으로만 남아있다.
현재도 종(種)을 이어가는 코요테나 회색늑대 등 갯과 동물과의 먹이 경쟁에서 밀려 멸종했다는 것이 정설이 돼왔지만 이를 뒤집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과 과학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이 대학의 고생물학자인 라리사 드산티스 부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스밀로돈이나 아메리카 사자(American lion) 등 대형 고양잇과 동물이 숲속에서 사냥을 해 초원에서 사냥하는 늑대를 비롯한 갯과 동물과는 먹이영역이 달랐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로스앤젤레스의 천연 아스팔트 연못인 '라 브레아 타르 웅덩이(La Brea Tar Pits)'에서 발굴된 스밀로돈을 비롯한 동물의 이빨 화석 약 700개를 분석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 타르 연못에 말이나 들소 등이 빠져 갇히면 육식동물이 이를 잡아먹으려고 접근했다가 같이 갇혀 죽으면서 거대한 화석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팀은 우선 이빨의 미세한 마모 형태를 통해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해 씹은 것인지, 아니면 죽은 동물을 먹은 것인지 확인했다.
이와 함께 이빨의 법랑질에 남은 탄소 동위원소를 분석해 먹잇감이 된 동물의 서식지를 파악했다. 먹잇감이 된 초식동물이 숲의 풀을 뜯어 먹었는지, 초원의 풀을 뜯어 먹었는지에 따라 체내에 축적되는 탄소 동위원소의 비율이 다르고 이는 초식동물을 잡아먹은 육식동물의 이빨 법랑질에도 남아있게 된다는 점을 활용했다.
그 결과, 스밀로돈은 주로 숲에 살던 사슴이나 돼지 비슷하게 생긴 맥(tapir) 등을 사냥해 먹었으며, 초원에 살던 말이나 들소 등은 사냥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고양잇과 동물과 마찬가지로 숲에 숨어있다가 먹잇감을 덮치는 방식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화석 뼈에 남은 단백질인 콜라겐의 탄소와 질소 동위원소 비율을 토대로 스밀로돈이 초원에서 사냥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 앞선 연구를 뒤집는 것이다.
이는 홍적세(Pleistocene) 때 먹이 경쟁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돼온 스밀로돈과 갯과 늑대종인 다이어 울프(dire wolf)가 서로 먹이 영역이 달라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계에서는 화석이 되는 과정에서 변질할 가능성이 낮은 법랑질이 콜라겐 분석보다는 더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근거로 스밀로돈 멸종이 갯과 육식동물과의 먹이 경쟁에 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기후변화나 인류의 서식지 침입 등과 같은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밴더빌트대학 제공]
연구팀은 미주 대륙에서 현재까지 종을 이어가고 있는 포식자들이 큰 사냥감 대신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썩은 고기에도 입을 대는 등 먹이에 유연성을 보인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드산티스 교수는 보도자료를 통해 "스밀로돈 멸종의 결과를 본 것도 이번 연구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라면서 "퓨마나 늑대 등 현재 북미지역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여겨지는 동물들은 홍적세 때는 미약한 존재였지만, 큰 포식자와 큰 먹잇감이 사라진 뒤에는 이들 작은 동물이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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