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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힘겨루기에 WTO체제 출범 24년만에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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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힘겨루기에 WTO체제 출범 24년만에 최대 위기
美, 중국 겨냥해 개도국 혜택 폐지 압박…연말이면 상소기구는 기능 정지
'다자주의' 회원국 중심 기구로 사무총장 권한 약해 중재 어려움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WTO의 기능이 정지되는 사태에 각국이 대비해야 한다며 사실상 WTO가 무력화할 수 있다고 시인했다.
무역 분쟁에서 법원의 최종심 역할을 하는 상소기구의 공석을 채우는 문제 때문에 164개 회원국들의 협력을 요구하면서 한 발언이지만 그의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상소기구는 7명의 위원으로 이뤄지는데 인도, 미국, 중국 출신 위원 3명만 남아 있다. 올해 12월 10일이면 인도, 미국 출신 위원의 임기가 끝나고 내년 11월 30일까지가 임기인 중국 출신 위원 1명만 남는다.
상소기구는 3명의 위원이 한 건을 심리하기 때문에 12월이면 사실상 심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미국은 WTO 규범의 불합리성을 이유로 들면서 상소기구 위원 선임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이달 22일 열린 분쟁해결기구(DSB) 회의에서도 114개국이 제안한 상소기구 위원 선임에 대해 지지할 상황에 있지 않다며 보이콧했다.
WTO는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모든 의사 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한 국가라도 안건 논의에서 반대하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국에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고, 모든 게 회원국 중심으로 이뤄지는 체제다.


미국의 WTO 무력화 시도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시도가 WTO에서 개도국으로 여러 혜택을 받아왔던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걸 미국도 감추지 않았다.
미국은 상소기구 위원 선임 문제를 지렛대로 활용해 올 2월 WTO에 개도국 우대(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 축소를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제출했다.
이 개혁안에서 미국은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한국 등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이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농업 관세·보조금 규제에서 혜택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WTO 체제에서는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선언하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는데, 개도국으로 분류되면 협약 이행에서도 더 많은 시간이 부여되고 각종 규제도 느슨하게 적용받을 수 있다.
미국은 세계은행에서 고소득(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1만2천56달러) 국가로 분류한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한 나라 등에 개도국 우대 적용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중국, 인도를 겨냥한 제안이지만 한국도 이 네 가지에 모두 해당하기 때문에 이미 한국의 개도국 제외 우려는 올 초부터 제기돼왔다.
다만 중국, 인도 등이 미국의 제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뤄야 하는 현 체제상 미국의 제안이 그대로 수용될 가능성은 작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26일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이 WTO 개도국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한 것도 WTO 내 합의를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90일 이후 독자적으로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는데, 미국이 일방적으로 개도국 대우 중단을 선언하게 되면 WTO 체제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WTO를 불신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쪽에는 상소기구 위원 선임 보이콧, 한쪽에는 개도국 대우 독자 중단이라는 칼을 들고 WTO를 '미국에 맞게' 바꾸고, 교역 질서를 미국 우선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에 나선 셈이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 연장선인 WTO 흔들기가 내년 재선 가도에서도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12월은 6개월만 남은 게 아니라 바로 지금이 12월"이라며 WTO가 맞닥뜨린 위기가 현재형임을 강조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대체해 1995년 1월 출범한 WTO는 교역 개념을 상품에서 서비스, 지적 재산권으로까지 확장하고 다자주의 원칙에 따라 교역 분쟁 해결의 틀을 크게 바꿨지만 24년 만에 위기를 맞게 됐다.
minor@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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